인문학은 위기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대학 교수들이 만든 조어인데, 그 배후에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경쟁에서 이공계에 비해 뒤쳐진다는 자괴감, 취업양성소가 된 대학이 인문학 전공을 축소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 그 결과 인문학이 대학 내에서 사라져간다는 불안감이 모두 응집되어 있다. 결국 인문학 위기의 본질은 대학의 상업화와 관련이 있고, 대학의 상업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인문학은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싸우지 않고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사실 기초과학도 인문학과 동일한 위기를 겪고 있다.
얼마전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이라는 내 칼럼을 백낙청 교수가 공유해 인문학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백낙청 교수의 논문들을 살피다가, 그가 2010년 ‘사회인문학’이라는 화두로 쓴 논문을 발견했다. 인문학자 백영서 교수에 따르면 “ ‘사회인문학’은 단순히 사회 과학과 인문학이 만난 것을 의미하지 않고,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을 통해 ‘하나의 인문학’ 곧 통합학문으로서의 성격을 새롭게 되살리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사회인문학의 의미를 재차 이렇게 강조한다. 즉, “그것은 학문의 분화가 심각한 현실에 맞서 파편적 지식을 종합하고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감각을 길러주며 현재의 ‘삶에 대한 비평’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총체성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마치 에드워드 윌슨이 과학으로 모든 학문을 통섭하겠다고 외쳤듯이, 인문학은 사회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통섭을 꿈꾸는 듯하다.
사회인문학의 세 가지 과제는, “첫째 성찰 즉 인문학이 사회적 산물임을 확인하는 자기 역사에 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라는 이중적 성찰, 둘째 소통 즉 학문간 소통과 국내외 수용자와의 소통, 셋째 실천 즉 제도의 안팎에서 소통의 거점을 확보하되, 문화상품화가 아닌 사회적 실천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인문학의 과제는 성찰, 소통, 그리고 실천이다.
장회익의 ‘삶 중심 학문’부터 공공지식인 모델과 실천인문학이라는 시도까지, 인문학이 사회적 실천을 결여했다는 비판은 오래 되었다. 백영서 교수는 사회인문학을 이런 시도들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이, 사회인문학은 ‘대학’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단철학의 전통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대학이란 제도는, 가지고 있는 자원의 크기로 보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인문학은 대학 내에 위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인문학’ 프로젝트는 대학이란 제도 안의 연구소 중심으로 추진되고 기존의 학문체계의 혁신을 우선적으로 중시하는” 강단인문학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사회인문학이라는 개념이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인문한국’ 사업과제라는 사실이다. 즉, 사회인문학은 한 대학의 연구과제로 창조된 개념이다. 즉, 인문학 위기를 외치며 인문학의 사회성을 다시 회복하자던 인문학자의 본심은, 나는 어쨌건 대학에서 인문학 교수로 생존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었던 셈이다.
사회인문학이 죽어도 버텨야겠다는 대학은 이미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대학에선 인문학 시간 강사들이 강사법 등으로 인해 박봉으로 굶어죽어가고 있다. 만약 사회인문학이 진정으로 인문학의 실천성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대학 강사 문제와, 인문학 박사들의 절박한 삷을 먼저 이야기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인문학을 위협하는 대학의 상업화 문제와, 인문학이 한국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 국민에게 호소했어야 한다. 인문학계 내부의 절박한 사회적 문제, 즉 시간강사와 인문학 박사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감히 어떤 사회적 문제를 인문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인문학을 21세기 실학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문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실학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지도 않았고, 그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학문을 추구했던 유학자들의 한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먼저 사회인문학이라는 말부터 만들고, 공허한 논의만 이어가려 한다. 예상할 수 있듯이, 사회인문학은 연세대학교의 과제가 끝나버린 지금, 논문 몇 편과 책 몇 편을 내고 사라져버렸다. 한국사회는 사회인문학에 의해 어떤 변화도 겪지 않았고, 오히려 그동안 한국사회는 평범한 상식을 지닌 시민들에 의해 진보했다. 사회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가 대학 교수들 때문임을 증명하는, 완벽한 실패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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