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우리에게 홍콩은 여러 함의로 다가온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함에 따라 홍콩의 자치권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제 우리가 아는 홍콩은 없다. 중국에 반환되기 전인 1997년 이전의 홍콩과 중국에 반환된 이후의 홍콩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은 홍콩반환 당시의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 중국의 일부가 된 홍콩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은 '아시아 4룡'(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한국) 중 선두주자였던 홍콩을 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은 전후 아시아 경제부흥의 중심이었고,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한 축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자유무역 도시로서의 영광을 누린 홍콩의 위상은 '홍콩 간다'는 관용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한마디로 홍콩은 주윤발의 영화 '영웅본색'과 같은 시대를 한껏 구가했다.
영웅본색에 뒤이어 1990년 '아비정전'은 홍콩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는 우울을 담았다. 또 신예감독 왕가위의 '중경삼림'은 2년 후의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 그럼에도 1984년 합의된 홍콩반환은 1997년 순조롭게 이행됐다. 홍콩반환 당시 홍콩의 미래를 우려한 일부 홍콩인들의 엑소더스 행렬도 있었지만, 중국이 약속한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50년간 고도의 자치권 보장'이라는 장치를 믿고 홍콩의 동요는 곧 가라앉은 채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행된 1989년 이후 우리나라 국민들이 당시 가장 많이 찾은 외국은 홍콩이었다. 그만큼 홍콩은 우리에게도 해외여행에 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딱 맞은 곳이었다. 우리는 홍콩의 과거를 향수했고 홍콩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고 홍콩에서만 할 수 있는 면세품 쇼핑을 만끽했다. 홍콩은 우리에게 추억도 있었다. 홍콩영화 팬들은 침사추이의 '홍콩스타의 거리'에서 임청하와 장만옥, 양조위, 오우삼, 이연걸 등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명판을 만나기도 했다. 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는 이곳에서 죽은 장국영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중국인들에게도 홍콩은 특별한 곳이었다. 사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중국 경제개발의 모델은 홍콩이었다. 덩샤오핑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시를 시범도시로 개방했고 광저우시 등 연해도시들을 전진기지로 집중 개발했다. 때문에 '중국령'이었지만 중국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갈 수는 없는 특수지역이었다. 그래서 홍콩영주·시민권은 개혁개방 이후 벼락부자가 된 대륙의 부자들만 가질 수 있는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그들은 홍콩영주·시민권을 확보해서 자유롭게 홍콩과 마카오를 드나들며 도박을 즐겼고 재산을 빼돌리거나 첩(얼나이)을 관리했다. 고위공직자의 부패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그들의 부패행각은 홍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였다. 홍콩은 벼락부자 ‘중국의 뒷구멍‘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반면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 입장에서 홍콩은 서구 제국주의에 능욕을 당한 치욕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홍콩의 중국 복귀는 대국굴기에 나선 중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제1·2차 아편전쟁 참패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령으로 빼앗긴 데 이어 1898년에는 이 지역을 99년간 영국에 임차하는 협정까지 맺었다. 임차기간이 끝나는 1997년이어 되어서야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됐다. 중국은 자유무역의 본산이자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영광을 유지하고자 50년간의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에 동의했지만, 이번에 홍콩보안법을 제정함으로써 홍콩의 자치는 반환 불과 23년 만에 파탄나게 됐다.
사실 20여 년 전부터 중국 자본의 대량유입과 대륙인의 대거 이주로 홍콩의 중국화는 완성단계로 접어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50여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아 온 홍콩인들의 반중정서는 의외로 깊었다. 때문에 중국인과 홍콩인의 갈등도 골이 깊다. 환구시보 같은 중국 매체들은 홍콩의 시위대들을 향해 바퀴벌레라는 비난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중정서를 가진 홍콩인들에 관해선 극렬주의자라는 뜻으로 '홍콩황시(香港黃絲)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그러나 홍콩에 대한 중국의 조바심은 오히려 홍콩의 영광을 후퇴시켰다. 150년간 서구식 제도와 문화를 향유해 온 홍콩인들에게 중국의 법제를 강제하는 것은 대국답지 않은 처사이기도 하다. 홍콩반환을 통해 중국은 19세기에 잃어버린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단초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의 조치는 홍콩에 대한 압제가 아니라 홍콩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을 지도 모른다. 이제 과거의 홍콩의 영광은 잊자. 중국과의 약속은 믿지 말고 의심하자.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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