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국제유가가 원유선물을 새로운 월물로 갈아탄 뒤에도 급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이와 관련된 투자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원유선물가격을 추종하는 지수상품들의 시세가 기초지수와 크게 벌어지면서 혼란도 커지고 있다.
유가가 결국엔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등이 추종하는 기초지수보다 주가가 몇 배씩 비싸게 거래되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피해도 예상된다.
ETF, ETN의 경우 매수·매도로 인해 추적오차가 생길 경우 해당 상품을 운용하는 금융투자회사가 반대로 매도·매수하면서 가격을 잡아주게 돼 있다. 시장조성자(LP)의 역할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매수 거래가 몰리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규모가 수천억대로 커지자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유가가 급락하는데도 괴리율은 좀처럼 좁혀지질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상황은 유가가 30달러, 40달러 선으로 올라야 ETN 시세가 정상이 되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유가 상승을 고대하는 투자자들이 이런 무모함을 감수할 정도로 ETF, ETN 상품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달 유가가 급락하는 사이 유가와 관련 투자종목들의 성적표는 어땠는지 다음의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자.
<출처: 블룸버그>
일단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을 반대로 추종하는 인버스, 숏 상품은 제외했다. 이런 지수 상품들도 유가 하락폭에 비례해 이익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주가가 오른 상태이므로 논외로 하자.
<그래프>의 검은 선으로 표시된 WTI 가격은 한 달 동안 -40%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 선물지수를 추종하는 KODEX WTI원유선물 ETF는 –48%를 기록하며 비교 대상 투자종목 중 성적이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똑같이 WTI선물 최근월물을 편입하는 USO도 -42%로 WTI에 뒤졌지만 KODEX 상품보다는 나았다.
두 ETF 사이엔 거래 시간과 환율이란 차이점이 있다. USO는 미국달러로 거래되지만 KODEX의 ETF는 원달러 환율을 헤지하는 상품이라 원달러 환율이 오를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모든 원유 추종 ETF, ETN 상품들은 원달러 환율을 헤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TIGER원유선물 ETF의 수익률이 –9.06%로 훨씬 더 나은 것은 편입하는 원유선물을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 있어서였다. 일반적으로 선물가격을 추종하는 지수상품들은 가장 가까운 최근월물을 편입하게 돼 있는데, 간혹 TIGER원유선물 ETF 같은 ‘인핸스드(Enhanced)’ 상품이 있다. 인핸스드 ETF는 월물을 교체할 때 그 시점에서 가장 유리한 월물을 고를 수 있다. TIGER원유선물 ETF는 현재 가장 먼 12월물을 편입한 상태다.
그렇다고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는 만기가 가장 멀수록 유가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월물 가격이 가장 높기 마련. 따라서 12월물로 갈아탈 때 롤오버 비용도 크게 발생했을 것이다. 또한 유가 하락기에 방어력이 좋았던 것과 같은 이치로 유가가 반등할 때는 이를 가장 적은 폭으로 반영하게 된다. 이런 특성으로 지수상품 중 TIGER원유선물 ETF의 성과가 가장 괜찮은 편이었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정유사들이다. 정유사들은 도리어 주가가 올랐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실적 우려도 주가에 영향을 주지만 전체 증시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다 보니 지난 한달 주가 반등에 올라탄 덕분이다.
다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난 이틀간 원유선물시장에서 벌어진 마이너스 유가 사태 당시 이들의 주가가 거의 제자리에서 굳건하게 버텼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정유사들은 유가 하락으로 대규모 재고손실이 발생해 적자를 낼 것이 거의 확실시 되지만, 저유가 상태가 오래 길어지면 현재 쌓인 재고를 조금씩 털어낸 후 저렴한 가격으로 새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판매하게 될 것이다. 이 시점부터는 실적이 정상화될 수 있어 기다리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
유가가 급반등할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지금처럼 괴리율이 크게 벌어진 상태에서 주가 급등락 파도를 타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다. 원유선물 지수상품 특히 ETN과 레버리지 상품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