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현대자동차 노사가 ‘와이파이’(Wi-Fi;무선인터넷 근거리통신망)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사측은 조업 중 무분별한 인터넷 사용은 안된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노사가 합의한 사항을 파기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노사가 와이파이 문제로 보기 민망할 정도의 소모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날부터 울산공장 내 와이파이 접속을 제한했다. 양측은 최근 이 사안을 두고 실무 협의를 진행해왔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와이파이를 차단한다면 내년 1월부터 임기가 시작하는 차기 집행부에서 다양한 대응방안을 마련해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사측은 지난 9일 노조에 와이파이 사용 시간을 쉬는 시간, 식사 시간에만 허용하겠다는 방안을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노조는 “와이파이 사용은 2011년과 2016년 노사협의회에서 합의된 사안이며, 이는 일방통행 식 현장탄압”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차 노사가 '와이파이' 문제로 갈등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 아산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노조는 사측 통보 직후 바로 항의집회를 개최했고 향후 모든 특근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사측은 노조의 반발에 이틀 만에 제한 조치를 해제했고 노조도 특근 거부를 철회했다. 하지만 사측이 24일 접속 제한을 재개하면서 노사 간 대립이 고조되고 있다.
사측은 작업시간 집중도를 높이고 품질 관리를 위해 와이파이 사용 제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직원들이 작업 시간을 조절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와이파이 논란이 불거진 후 노조에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점도 사측이 다시 강공모드로 나선 이유로 꼽힌다.
노조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노조 자유게시판에는 ‘와이파이를 끊는다고 하니 특근을 안하겠다는 걸 두고 주위에서 비웃는다. 이런 일로 현대차 조합원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하고, 품질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건 안하고 게임해야 하는데 와이파이 끊었다고 대자보에 특근거부를 거론했다.’, ‘와이파이 때문에 특근 거부한다고 욕 먹었는데 바로 협상해서 와이파이 다시 켜주니 고맙다고 특근 시작하고 뭐 하는 짓인지’ 등의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와이파이 논란이 현대차의 품질 신뢰도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차 전주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게시판에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면서도 “노조 자유게시판에 와이파이 관련 글은 총 8개인데, 한 명이 와이파이 관련 ‘특근거부’ 글을 3개나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차 조합원 수는 5만1000여명에 달하는데, 일부 소수 조합원의 의견이 전체 조합원 정서를 반영하지 않는다”면서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건 조합원 전체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노조의 태도에 비판적이다. 노사가 한일 경제갈등, 미중 무역분쟁 및 국내 자동차 업계의 위기상황을 고려해 지난 9월 임단협에 최종 합의했는데도 와이파이 문제로 분쟁을 벌이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특히 자동차 품질은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작업중 와이파이 사용을 고집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는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된 정밀한 기계이기 때문에 업무의 집중도와 완성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일부 근로자들이 이른바 내려치기(빠르게 조립해 휴식시간을 만드는 행위)와 올려치기(지나간 차량을 나중에 조립하는 행위)를 통해 동영상 시청이나 메시지를 주고 받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조립 불량의 원인이 되며, 반드시 금지돼야 할 행위”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도 “이번 와이파이 사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차량의 품질 문제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최근 논란으로 인한 현대차의 대외적인 이미지, 신뢰도 하락에는 노조의 책임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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