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현대·기아자동차는 17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서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디자인 품평장과 설계 검증 시스템을 미디어에 최초 공개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3월 150억원을 투자한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VR 디자인 품평장을 완공했다. 이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디자인 품질과 감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했다.
VR 디자인 품평장은 20명이 동시에 VR을 활용해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시설이다. 실물 자동차를 보는 것과 같이 각도나 조명에 따라 생동감 있게 외부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자동차 안에 들어가 실제 자동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실내를 살펴볼 수 있다.
이날 체험행사에서 A조에 편성된 기자 10여명은 VR 장비를 착용해 실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경험했다. 어깨에 배낭 모양의 장치를 메고 헤드셋을 장착했다. 헤드셋 내 특수 렌즈가 있었고 안경을 쓴 채로도 헤드셋을 머리에 고정시킬 수 있었다.
VR 장비를 착용한 모습. 사진/김재홍 기자
VR 시스템을 가동하니 참가자들이 가상현실에서 아바타 모습으로 표현됐다. 실제 모습이 보이지 않고 가상현실만 나타나기 때문에 참가자들끼지 충돌하거나 벽에 부딪힐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파란색 점선으로 큰 원이 그려져 있는데 그 속에 들어가면 참가자들만 있고 아바타 모습만 조심하면 충돌할 우려가 없어 마음이 한결 놓였다.
눈 앞에 현대차의 수소 전용 트럭 콘셉트카 ‘넵튠’의 모습이 보였다. 양 옆으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엑트로스’, 테슬라 ‘세미’ 등 트럭도 위치해있었다. 인스트럭터가 넵튠을 원 중앙으로 당겼고 참가자들은 트럭 주위를 돌면서 외부 디자인을 살펴봤다. 실사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넵튠의 디자인 특성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이미지로 표현됐다.
넵튠의 내부 디자인도 볼 수 있었다. 아바타들은 트럭 외부 표면을 투시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트럭과 ‘충돌’할 것 같아서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용기를 내서 내부로 들어갔고 스티어링 휠, 센터페시아, 운전석과 동승석 등을 볼 수 있었다. 내부 뒤쪽으로 이동하니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와 2층 휴식공간도 보였다.
VR 장비를 통해 구현된 현대차 '넵튠' 내부 모습. 사진/김재홍 기자
장비를 벗고 천장을 봤는데 푸른색 불빛을 내는 램프들이 보였다. VR 디자인 품평장 내에는 36개의 모션캠처 센서가 설치돼있고 VR 장비를 착용한 평가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1mm 단위로 정밀하게 감지한다는 설명이다.
현대·기아차 디자인 부분은 조만간 유럽, 미국, 중국, 인도 디자인센터와 협업해 전 사계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가상 공간에서 차량을 디자인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양희원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바디담당 전무는 “디자인 평가자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간단한 버튼 조작만으로 차량의 부품, 재질, 색상 등을 마음대로 바꾸면서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면서 “고객 관점에서 디자인과 설계 등을 검증해 품질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17일 VR 프로세스 체험 행사에서 착용한 장비. 사진/김재홍 기자
옆 공간으로 이동해 차량 설계 관련 VR을 체험했다. 측정 장비를 착용했더니 신형 ‘K5’의 모델이 눈 앞에 나타났다. 스위치 버튼을 누르니 가상화면에 레이저가 발사됐다. 손잡이에 쏘면 문이 열리고, 와이퍼에 조준하면 와이퍼가 작동하는 등 각 부품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볼 수 있었다.
보닛 부분에 레이저를 발사했더니 보닛이 열리면서 신형 K5의 엔진이 구동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또한 모드를 변경했더니 차량이 주행하는데 공기가 앞 범퍼를 타고 위 아래로 퍼지면서 이동하는 모습도 구현됐다. 다른 버튼을 눌렀더니 K5 모델이 해체되고 프레임부터 다시 부품들이 조립되는 장면이 애니메이션 효과로 구현됐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VR 설계 품질 검증 시스템은 자동차 운행 환경까지 가상으로 구현해 부품 간의 적합성이나 움직임, 간섭, 냉각 성능 등을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희원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바디담당 전무가 17일 VR 체험 전 설명을 하는 모습. 사진/김재홍 기자
현대·기아차는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 전 과정에 완전 도입될 경우 신차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는 최종 디자인 선정 단계 등에서 클레이 모델을 만들어야 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시안을 많이 만들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VR 시스템은 디지털 모델로 디자인을 품평하고 개발단계부터 각 부서 간 논의가 가능하다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이날 체험을 하면서 VR을 활용해 시각적, 공간적 체험은 할 수 있었지만 촉각은 경험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관련 기술을 더욱 개발해 보다 실사에 가깝게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질감, 촉감 등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강화를 통해 품질과 수익성을 높여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연구원들이 VR을 활용해 가상공간에서 설계 품질을 검증하는 모습. 사진/현대·기아차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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