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초과학 담론은, 보이지 않는 괴물에 대해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직까지 누구도 한국사회의 기초과학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과학자도, 대중도, 그리고 기초과학원장을 역임한 김두철 박사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서양인들의 역사에서만 기초과학에 대해 추론하고 토론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그렇게 잘 모르는 괴물의 모습을, 제대로 그림 그리는 법도 익히지 못한 초보 화가들이, 순서도 계획도 없이 누더기처럼 그린 작품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자들은, 오랜시간 기초과학 르네상스를 꿈꿔왔고, 은하도시라는 구상을 시작으로 과학비즈니스벨트를 거쳐, 현재의 IBS를 만들어냈다. IBS가 시작된지 벌써 7년이 넘어 8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미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견되었고, 정치인과 관료의 무지 속에서 IBS는 분명히 표류하고 있다. 현장의 기초과학자는 한 명의 단장에게 주어진 지나치게 비대한 연구비와 권력에 대해 성토해왔고, 벌써 몇번이나 발각된 단장의 연구비 부정과 비리는 그 비판을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계는 IBS라는 골치아픈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IBS를 진정한 한국형 기초과학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선, 소그룹과 다양성, 수평적인 문화와 관료주의로부터의 탈피에 집중해야 한다. 중이온 가속기처럼 물리학의 거대과학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기초과학은 지금 IBS가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단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홍성욱은 오래전 ‘세상을 바꾼 소그룹과 세미나’라는 글을 통해, 과학사에서 세상을 바꾼 발견이 대부분 ‘문제해결’을 위해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그룹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지적했다. 물론 이런 소그룹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소그룹이 충분한 임계다양성을 지닌 숫자로 존재하던 곳에서 혁명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그룹, 비엔나 학단의 논리실증주의, 20세기 독일의 바우하우스 그룹, 2차대전 이후 노버트 위너를 통해 모인 싸이버네틱스 그룹, 맨하탄 계획을 이끈 오펜하이머의 로스 알라모스 실험실,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개발한 제록스 팀, 인터넷을 건설한 ARPA의 엔지니어들, 아인슈타인의 올림피아드 그룹, 20세기 초반 캠브리지의 생화학 그룹, 벨기에 브뤠셀의 발생학 그룹과 열역학 그룹, 니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영국의 이론생물학 그룹, 이들 모두 제도화된 기관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려던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소그룹이었다.
홍성욱은 훗날 소그룹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 지금은 IBS 연구단장이 된 김빛내리 교수의 연구실을 분석한다. 거기서 그는 황우석과 김빛내리 교수 연구실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수평적 문화와 공정성, 그리고 한 지붕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학제간 연구라고 결론내린다. 김빛내리 교수가 이룬 가장 혁명적인 발견들은 그가 IBS 단장이 되기 전에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소그룹의 문화는 과학사의 다른 혁명적 그룹처럼 자발적이고 수평적이었다. IBS는 바로 그 초창기 김빛내리 교수의 소그룹 같은 팀을 더 많이 키우고 발전시키는 전략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IBS의 초기 설립자들은 이미 안정적으로 성장한 중진 교수들을 선택해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기초과학 연구의 부흥을 꿈꿨다. 앞뒤가 바뀐 어리석은 전략이다.
현재 IBS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고급 인력의 유입이 막혔다는데 있다. 연구원들에게 약속되었던 안정적인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 불만은 IBS 연구원 550여명이 모인 노조의 결성으로, 새로운 해외 고급인력의 IBS 기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김두철 전원장은 기초과학도 사람이 해나가는 일이라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가 원장으로 해온 발언들에서, 기초과학자의 연구환경에 대한 언급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과학 후속세대에 대한 혁신적인 정책 없이, IBS는 결코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기초과학계 원로들이 쓴소리에 더 크게 귀기울이고, 정치인과 관료가 아니라 현장의 기초과학자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 마침 지난주 새로운 IBS 원장이 임명되었다. 노도영 원장이 추락한 IBS의 명예를 다시 세우길 바란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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