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화학사업을 축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한 신동빈 회장은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대할 복안이다. 주력 유통 사업이 사드 이슈와 온라인 매출 경쟁에 사양화되고 있는 가운데 화학사업을 키우는 게 절실해졌다. 화학사업은 기존 석유 기반 국내외 생산설비가 미국 셰일가스 기반 화학설비에 원가경쟁력에서 밀리며 궁지에 몰리던 참이었다. 이번 미국 가스 기반 화학설비에 직접 투자해 막혔던 부분을 풀어나갈 방침이다.
롯데그룹의 대들보가 된 화학사업은 미국 생산투자를 기점으로 대전환기를 맞는다. 롯데그룹의 이번 투자는 롯데지주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유화 계열사를 지주사로 편입했으며, 화학 부문을 그룹 내 핵심 기반으로 삼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자바 반텐주에서 진행된 대규모 유화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시동을 걸었다. 롯데케미칼은 나프타크래커 공장과 하류 부문 공장을 건립해 오는 2023년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공장에서는 연간 100만톤의 에틸렌과 70만톤의 에틸렌글리콜을 생산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공장의 본격적인 가동으로 기존 원료인 나프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가스원료 사용 비중을 높여 유가 변동에 따른 리스크 최소화와 안정적인 원가 경쟁력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공장 준공으로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에틸렌 생산은 연간 약 450만톤으로 국내 1위, 세계 7위권의 규모를 갖추게 된다.
미중 무역분쟁 협상이 지연되며 경제성과를 위협받는 트럼프 대통령은 역내 투자 기업을 반기는 데 공들인다. 신동빈 회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기업의 대미 투자를 적극 끌어당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 대상이 하필 중국에서 사드 이슈로 밀려난 롯데라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중 무역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자 “중국은 2020년 차기 대선 무렵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내 두 번째 임기에 협상이 진행된다면 합의는 중국에 훨씬 나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높은 경제성과를 자평하며 재선에 성공할 것이란 자신감도 드러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 있는 롯데케미칼 에탄크래커 공장 전경. 사진/롯데지주
이후 이번 면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역내 대규모 투자에 나선 롯데그룹 등 한국 파트너가 미국시장을 신뢰한다는 방증이라며 굳건한 미 경제상황을 강조했다. 자신의 치적을 드러내는 한편 대중 압박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공교롭게 롯데는 중국의 사드 이슈 이후 현지 투자에 차질을 빚으며 기존 사업도 상당부분 철수했다. 미국은 사드를 제공한 국가로, 롯데로서는 중국 대신 미국과의 인연이 공고해진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는 사드 부지를 제공한 이유로 중국에선 뭇매를 맞았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게 아닌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롯데를 칭찬하는 모습은 정치외교적 이슈가 경제적 탄압으로 이어진 중국 시장의 불합리와 묘하게 대조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의 대미 화학사업 투자는 그러나 중국에 진출했던 유통 부문과 마찬가지로 미중 분쟁의 불똥을 맞을 우려가 있다. 화학사업 역시 주력 수출시장이 중국인지라 미국 생산이 미중 간 무역분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롯데의 미국 내 투자를 크게 반기는 것이 다시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것도 롯데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롯데그룹은 중국에서의 사업을 계속해서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은 9일 에탄크래커 공장 준공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그룹에 아주 중요한 시장으로 포기할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롯데그룹은 현재 중국에서 백화점 4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2020년 10월에는 청두에 상업 시설을 오픈할 예정이다.
지난 9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롯데케미칼 에탄크래커 공장 준공식이 진행된 가운데 존 벨 에드워즈 루이지애나 주지사, 이낙연 국무총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해리 해리슨 주한미국대사, 실비아 메이 데이비스 백악관 전략기획 부보좌관(사진 왼쪽부터)이 사진 촬영하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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