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은 선거법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다른 개혁입법과 묶어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처리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 개혁 등에 대해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대로라면 민주당과 야 3당의 협상에 따라 단일안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된다. 만약 단일안이 만들어진다면 그 안이 패스트트랙으로 가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선거제 개혁이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정당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는 이제 2~3주 안에 가닥이 잡힐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여당인 민주당이다. 한국당이야 선거제 개혁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보인 정당이지만, 민주당은 다르다. 민주당은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시절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2017년 대선 때에도 이 제도를 권역별로 도입한다는 게 공약이었다. 그런 민주당이 이해찬 대표 취임 이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에 잠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자신이 비례대표 공천권을 챙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아주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므로 그의 사고를 한번 따라가 보자. 지금 시민사회와 야 3당이 주장하는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이 우선 배분된다. 가령 전체 의석을 300석이라고 하고 민주당이 정당 득표율을 40% 얻었다면, 120석이 우선 배분되는 것이다. 이렇게 의석을 배분한 후 민주당의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센다. 만약 민주당의 지역구 당선자 숫자가 100명이면 민주당이 배분받은 120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100명을 뺀 나머지 20석이 민주당 몫 비례대표가 된다. 만약 민주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120명을 넘으면 민주당에 우선 배분된 120석이 모두 채워지게 됐으므로 민주당 몫의 비례대표 배분은 없게 된다.
이 대표가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이처럼 민주당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은 의석보다 지역구 당선자 숫자가 많은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석이 민주당에 배분되지 않으니까 자신이 비례대표 공천권을 갖고 있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비례대표 공천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곤란하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의중을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은 연동형 효과를 50% 수준으로 반감시키는 '짝퉁'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놨다. 그 방안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고 국민들에게 설명하기도 민망한 방안이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민주당의 기존 당론은 내팽개쳐졌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자는 비례성의 원칙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3월에 발의한 헌법개정안에도 포함된 내용이지만 이 대표의 비례대표 공천권 집착에 유명무실해졌다.
만약 민주당이 이런 짝퉁을 고집하다가 선거제 개혁이 물건너 가면 문재인정부는 결국 제도개혁에 실패한 정권이 될 것이다. 선거제 개혁만이 아니라 검찰개혁도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내에서는 "2020년 총선이 끝나고 나서 하자"는 말도 나오지만, 집권 후반기에는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다. 그리고 과연 2020년 총선에서 이 대표가 계산한 것처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압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당 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돼야 정당들은 정당 득표율을 올리기 위해 정책 경쟁과 개혁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국회에서 생산적 토론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중요한 개혁이 좌초돼야 하겠는가.
한심한 것은 이 대표의 몽니가 개혁을 무산시킬 상황인데도 민주당 안에서는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민주당 내부에서 침묵이 흐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대표가 2020년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어서다. 결국 대표의 공천권이 무서워 정권의 실패를 방관하겠다는 게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태도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민주당 내부에 있는, 소위 '개혁적'이라는 의원들의 성찰이 필요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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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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