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비워놓고 멀리 떠나 휴식을 취한다는 '바캉스(vacance)'라는 말은 '텅비우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나왔다. 이 말이 프랑스에서는 '휴가'라는 뜻으로, 영어에 들어와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vacation, vacancy'로 쓰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바캉스에 직접 영향을 미친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는 학생이나 교사, 혹은 법관 등에게 주어진 비교적 긴 휴가를 뜻했다. 산업화이후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근로자들에게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지면서 바캉스로 발전했다.
노동시간이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높은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선진국보다는 연차휴가가 비교적 적다. 바캉스의 나라라 불리는 프랑스는 1년에 30일 휴가를 주는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연속 12일을 붙여 써야 한다. 1개월 가까운 휴가가 가능한 이유다. 독일과 영국도 연차휴가는 각각 24일, 28일이다. 한국의 15일 휴가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1년의 근무기간에 대해 최소 3주이상의 연차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연차 유급휴가 수당대체를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ILO는 휴식제도를 보장해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방식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선진국보다 일하는 시간은 많고 휴식시간은 짧지만 최근 들어 국민 휴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휴식이 경쟁력'이라는 신조로 대선 공약에서 국민 휴식권 보장을 약속했고, 그에 따른 정책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의 선두에 있는 '주 52시간 시행'은 확실히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효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1년 전보다 1.3시간 줄어든 41.5시간으로 나타났다. 5년 만에 가장 크게 감소한 수치면서 40시간에 가장 근접한 결과다.
휴식권도 확대됐다. 지난해부터는 신입사원과 육아휴직자에게도 첫해에 연차휴가를 부여해 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이다. 워킹맘에게는 1년간의 육아휴직 복귀 후에도 그간 없었던 연차휴가를 근속년수에 따라 15일 이상 25일 한도로 제공했다. 신입사원에 대한 연차휴가도 신설했다. 첫해에 휴가가 없어 2년차 휴가를 미리 당겨써야 했던 점을 보완해 입사 1년차 근로자에 대해서도 최대 11일의 유급연차를 보장한 것이다.
휴가독려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해주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업체 직원이 20만원을 내면 기업이 10만원, 정부가 10만원을 각각 지원해 40만원의 휴가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이 지원은 2만명을 지원했는데 신청자가 10만명 몰려, 올해는 8만명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휴가시간과 휴가비지원을 모두 아우르는 대책마련에 집중한 셈이다.
다만 이처럼 정책방향이 근로자의 휴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갈지라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으면 체감효과는 낮을수 밖에 없다. 인력부족의 어려움을 겪는 태반의 중소기업 직원들이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기 어려운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휴식과 노동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수 있도록 쉼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은 옳다. 하지만 정부가 많은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게 정책의 '사각지대'까지 보듬어주길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워라밸(일과 여가의 균형)' 삶을 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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