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공동 창업자중 한 명인 앤드류 그로브(Andew S. Grove) 회장이 현역 시절 때 이야기다.
그로브 회장은 한 거래처가 개발해 호평을 받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회사 직원들로부터 평가보고를 받았다. 정보산업 담당자는 신종 소프트웨어를 채택한 후에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후속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때까지 제품의 채택을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 마케팅 담당자도 다른 여러 기업으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했다.
그로브 회장은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서 보고받은 얘기를 전하고 전략을 바꿔 신제품 개발에 착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전혀 그럴 의향이 없으며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해나갈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기업전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로브 회장이 대화내용을 안건으로 제시했던 인텔 직원들에게 전했다. 정보산업 담당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그러기에 경영자는 제일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이 되지요”라고 말했다.
그로브 회장은 저서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이 경험을 들려주면서 “최고경영진은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지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변화 특히, 기술의 변화는 업종을 불문하고 기존의 질서를 뒤엎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기회이자 재앙이 된다. 빠른 변화를 가장 먼저 터득하는 사람들은 기업의 중간경영자들이다. 그들은 사태의 효과가 기업 전체에 미칠 정도로 심각해지기 전에, 때로는 최고경영층이 느끼기 전에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다. 영업과 같은 분야의 중간 관리층은 누구보다도 먼저 이러한 변화를 깨닫는다. 그러나 중관 관리층은 최고경영진에게 이를 설명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이러다보니 최고경영진, 즉 지도자는 가장 나중에야 상황을 깨닫게 되곤 한다.
1994년 인텔은 PC용 중앙처리장치(CPU)인 ‘펜티엄 칩’ 부동소수점 연산 오류 사태를 해결하는 데 당시 5억달러가 넘는 손실은 물론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해 수년의 기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로브 회장은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바깥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을 접하기가 힘든 요새에 둘러싸여 있었던 그 소프트웨어 대표처럼, 인텔에서 펜티엄칩이 초래한 위기의 정도를 가장 늦게 깨달은 사람이 최고 경영자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로브 회장은 사태를 통해 변화의 바람에 스스로를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단다. 그는 “시선을 돌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경쟁자들에 관해, 산업계의 현재 동향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관해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우리의 감각과 본능은 눈부시게 예리해질 것이다”고 했다.
2018년 한국은 도처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1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도 다 아는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더군다나 변화를 느껴도 보고할 시간 없이 일하는 중간 관리층의 잘못만 따지고 있다. 아집과 권한에 집착하는 사이 이들 지도자들은 ‘제일 나중에 알게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채명석 산업1부 재계팀장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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