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이날이었던 걸까. 대규모 노란조끼 시위가 일어났던 지난 8일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2년 전 우리나라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면 이들은 노란조끼를 입었다는 것만 다를 뿐. '살기위해' 거리로 나온 일반 시민들의 표정은 우리와 똑같았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부활, 연금개혁, 대입제도 개편 등을 요구하며 노란조끼를 입었다. 시민들은 소방차가 지나가면 격려도 했다. 경찰들한테는 고생한다고 덕담도 나누면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모두 함께하자(tous ensemble)"를 외치기도 했다.
직접 목격한 이들의 모습은 평범했다. 하지만 파리에 가기 전 언론에서 본 모습은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지인들은 노란시위의 폭력을 우려했고,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실제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주 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과 외교부에서 '프랑스 전역 반정부시위 간 폭력사태예상. 외출자제 등 신변안전유의'라는 문자를 받았다. 프랑스 정부 역시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에 마크롱 대통령이 철회키로 함에도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자 주요 관광지를 모두 폐쇄했다. 토요일 하루 동안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은 굳게 닫혀있었다. '과격시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행태들이었다. 일부 과격 시위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이지 전체 시위가 폭력으로만 치달은 것은 아니었다.
노란조끼를 입은 이들은 그냥 시민들이었다. 마크롱 정부가 기업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면서 서민들에게만 세 부담을 주는 모습에 실망해 노란 조끼를 입은 것이다. 부의 불평등 분배가 저항으로 이어진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2년 전 광화문으로 나왔다. 이른바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고,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아 '사람중심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최근 최저임금인상 여파, 악화된 소득분배지표, 고용한파 등이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한 탓일까. '속도조절'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최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성장전략인 '소득주도성장'이 자취를 감췄다.
경제정책방향은 다음년도에 추진할 경제정책 중 가장 중요한 핵심전략을 선정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1년 전 발표한 '2018 경제정책방향'에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표현이 무려 10번이나 등장했다. 하지만 올해는 단 1번으로 줄었다. 후순위 정책으로 밀렸다는 의구심이 짙어지는 대목이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의 대표 정책으로 인식됐던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수술대에 오른다. 개편된 결정구조에서 시장수용성, 지불능력, 경제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케 하겠다는 취지다.
경제지표나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 정책의 조율과 속도조절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부가 내걸었던 '사람중심경제'라는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내수와 수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불균형이다. 정부가 초심을 잃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하면서 원래 기조를 이어나가길 바란다. 프랑스의 '노란조끼'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곱씹으면서.
김하늬 정경부 기자(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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