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연동형 비례제만으로 국회 선진화 불가하다
2018-12-24 07:00:00 2018-12-24 07: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입법의 실패는 정의(正義)를 우습게 만든다. "국회를 선진화하자"는 요구는 국회를 비웃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 스스로도 동의하는 과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비례대표제를 개선하기 위한 야 3당 대표들의 단식이 잠정적으로 중단됐고, 조만간 개혁을 향한 국회의원들의 회동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등에서는 '지역구 의원 정수를 줄일 것이냐 말 것이냐', '비례대표를 어떻게 선출할 것이냐' 등의 안건을 놓고 다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전망이 그렇게 밝지 않다.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역구를 줄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의 정수를 200인 이상으로 하되 법률로 정한다"(제41조 제2항)고 규정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300명이라는 벽을 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몇 개의 지역구를 합친다면, 지역구 의원을 약간 줄이고 그만큼 비례대표 의원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지역구 수가 줄어들면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당리당략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런 접근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실현하자면, 국회의원 지역구를 광역단위로 재구성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현행처럼 인구를 기준으로 해서, 서로 다른 생활권이라도 다른 인접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을 합쳐 국회의원을 뽑을 일이 아니다. 지금 선거제도처럼 어정쩡한 방식으로 지역구를 만들 경우 인구가 많은 지자체 출신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시·도 단위로 국회의원 정수를 배분하고 의원을 선출하면 될 것이다. 물론 선거운동도 종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획기적으로 고쳐야 할 것들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문제들이 많았다. 그동안 모든 국회의원들은 선거공약에 지역개발을 내세웠다. 공약을 실현하려다 보니 국회 예산심사에서 출신 지역구를 챙기느라 바빴다. 지난 정기국회에서도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가 예외 없이 드러났다. 이런 모습이 지역 유권자들에게는 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는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지자체들은 소관 행정부를 통해 예산을 신청하고 배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감시자인 국회의원이 여기에 개입하는가. 감시자가 사업자처럼 행동하면 국민들은 감시자를 잃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개발 공약은 법리상으로도 문제가 큰 게 사실이다. 헌법상 권력분립 원리에 비춰보면, 국회의원들의 개발공약은 위헌이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되지만, 헌법에서는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헌법 제46조 제2항)도록 되어 있다. 국회의원은 지역 유권자들의 대표가 아니라 전체 국민의 대표다. 그래서 대통령을 견제하고 행정부 장관들에게 나름대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으로서는 불가능한 권능이다. 개발은 국회의원의 역할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몫이다. 출신 지역구의 개발이익을 위해 예산을 배정하거나 그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처사가 아니다.

국회의원 광역선거구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지역구 국회의원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만큼 비례대표들을 늘릴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소선거구를 누비고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부담의 경감은 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첩경이다. 광역선거구는 국회의원들이 입법정책과 예산·결산 그리고 국정감사에 충실하도록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예산배정에서 출신 지역구 대표처럼 행동하는 동네 지도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개발공약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교섭단체 제도의 개혁도 절실하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만 선언했다. 국회법에 "상임위원회를 만들라" 또는 "교섭단체를 만들어 협상하라"고 수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회는 교섭단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효율성을 지향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비효율을 양산하고 있다. 교섭이 실패할 경우 소관 상임위원 5분의 3이 찬성해야 법안을 통과시키는 '패스트트랙'을 밟을 수 있는데, 말만 '패스트' 이지 실제로는 무려 330일이나 걸리는 초완행이다. 교섭단체가 위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교섭단체는 정당이라는 집단이익에 포위됐다. 그런 교섭단체 대표는 본인-대리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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