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게임 작업장의 경제
2018-10-25 08:00:00 2018-10-25 08:00:00
게임에서 부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게임 아이템을 모아 파는 사람들, 이른바 '작업장'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작업장을 운영해서 한 달에 몇 천만원씩 번다는 소식을 여기저기서 접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1조원 규모의 불법 온라인게임 작업장을 운영하다 검찰에 적발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도대체 작업장은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이 출시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우리나라 온라인, 모바일 게임은 11조 원 매출 규모로 8만여 명 일자리를 제공하는 규모의 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게임회사의 주요 사업모델은 게임 상의 물건, 즉 게임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아이템은 게임 상의 캐릭터들이 획득 혹은 제작하도록 설계돼 있다. 게임 이용자는 게임에 시간을 써서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용자로부터 얻을 수도 있다. 좋은 게임 아이템이 있으면 게임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으니 현금을 주고라도 아이템을 살 유인이 생긴다. 유명 게임의 칼 아이템 하나가 1억 원이 넘게 거래된 적도 있다. 이런 수요가 있으니 돈을 벌 의도로 게임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획득하고 판매하는 이른바 작업장이 만들어진다.     
 
작업장은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개의 게임 이용자 계정을 쓰고 비인가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기업형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한다. 온라인 게임 작업장은 적게는 수십 대에서 많게는 수백 대의 PC를 이용하기도 하고, 모바일 게임의 경우에는 사양 좋은 컴퓨터에 여러 스마트폰 화면을 올려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 아이템들은 일반적으로 게임 내에서 유통되는 것이 아니고 중개 거래사이트나 직거래를 통해 거래된다. 
 
왜 게임 이용자들은 아이템을 현금을 내서라도 사려고 하는 걸까?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낮은 수준부터 시작해서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게임 아이템을 획득하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니 빨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용자는 현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돈을 써서라도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고 싶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게임 내의 아이템 거래를 위해 게임 밖에서 개인 대 개인 거래로 현금이 지불되니 사기와 같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아이템을 위한 안전거래 중개 사이트 사업도 성황이다. 국내에 이런 중개 사이트 수수료가 보통 5%이고 중개 사이트들의 연간 매출이 500억 원을 상회하니 중개사이트를 통해 거래되는 게임 아이템 거래 총액은 1조 원도 넘는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작업장에서 다른 이용자의 명의가 도용되기도 하고 비인가 프로그램 사용으로 선점된 아이템이 다량 유통되면서 일반 이용자들은 게임 이용에 불편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돈 되는 일부 아이템이 갑자기 품귀현상이 나니 게임 내 경제에 악영향이 끼친다. 이를 막기 위해 게임회사들은 작업장과 비인가 프로그램을 잡는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야 한다. 해외 작업장과 연대하여 아이템을 획득하고 국내에 게임 아이템을 판매하는 국제적 작업장들을 잡아야 하는 게임회사는 부담이 더욱 커진다. 
 
게임 아이템 유통은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할 때 직면하는 문제들과 거의 같다. 아이템의 시세가 게임 개발사에 의해 결정되나 외부 중개거래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고 암시장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아이템이 거래되기 때문에 게임회사들은 아이템 수와 가격을 적절히 조절하여야 한다. 
 
현재 작업장과 같은 게임 운영 문제는 전적으로 게임회사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게임 분야의 연구를 해보면서 게임에 대한 법제도 및 규제 인식이 ’80년대 오락실 시대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간 1조 원도 넘는 게임 아이템이 거래되고 있는데도 국제적 작업장 운영과 같은 이슈는 전적으로 게임 회사가 자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게임 아이템 거래 가상경제에 대한 관리를 공식화 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을 활용한 아이템 거래 이력을 추적한다든지 개별 게임회사가 할 수 없는 기술적 투자에 대해서도 논의를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작업장 운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등을 게임회사에만 책임을 갖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이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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