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문재인정부의 해운업 재건 방안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및 해운업계와의 공조체제 강화 등의 노력은 높이 샀지만,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근본 처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때 세계 7위 컨테이너선사였던 한진해운을 파산으로 내몬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패착 중 하나는 '컨트롤타워의 무능'이다.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가 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했다가, 정권이 교체되기 직전 기획재정부로 이관했다.
문제는 기재부가 고삐를 잡기 전까지 금융당국이 '산업 없는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는 데 있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산업별 중요성과 포트폴리오 구축을 우선순위로 두기보다 당장 쓸 수 있는 자금을 얼마나 확보했는지를 구조조정의 주요 판단근거로 활용했다. 당시 세계 16위이자 해운동맹 가입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을 제치고 살아남은 것도 이런 배경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해양강국'으로의 재도약을 강조하며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7월 한국선박해양, 한국해양보증보험 등을 합쳐 출범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앞선 약속의 결과물이다. 그간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해양수산부가 해양진흥공사 설립을 주도하고 선박 발주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점은 분명 변화된 대목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서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미진하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지난 3월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의 통합론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지만 정부는 침묵했다. 양측은 감정의 골만 깊어진 채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통합론이 반짝 부상했었던 지난 2015년이 연상된다. 물론 현대상선이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SM상선은 민간인 SM그룹이 각각 대주주로, 정부가 선뜻 나서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럼에도 해운업계에서는 문재인정부라면 다르게 대처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해운업 재건이 '현대상선 구하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도 컨트롤타워의 자질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중국과 동남아를 오가며 물류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근해선사에 대한 지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내년부터 회계기준 변화에 따른 부채비율 급등,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연료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해운업계는 또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근해를 담당하는 중견선사들 역시 빌린 배를 줄여 부채비율을 낮추고, 선박 신조발주나 황산화물 저감장치인 스크러버 장착 등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자력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운 코리아' 재건의 핵심은 지원책 마련이 전부가 아니어야 한다.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양지윤 산업1부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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