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노동조합원의 의견 수렴을 전혀 하지 않고 회사 측과 명예퇴직 등 노사합의를 체결한 KT노조와 노조대표에게 노조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중요 근무조건에 대한 노사간 합의 과정에서 노사간 규약과 협의 관행, 노조 대표의 권한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같은 취지로 하급심에 계류된 사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박모씨 등 전·현직 KT 노조원 226명이 "중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노조원들의 의사 수렴 없이 사측과 일방적으로 합의한 데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KT노조와 정모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2명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피고는 연대해 원고들에게 각 20만원~3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과 법률 규정에 비춰 보면, 노조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해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이런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조합원들의 단결권과 노조 의사 형성 참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에서 규약은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사항을 조합원 총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고, 대표자로 하여금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정하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피고 정씨 등이 총회 의결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노사합의를 체결한 것은 규약 위반으로 노조의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절차적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이고,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옳다"고 판시했다.
KT는 2014년 4월 근속 15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시행하고, 다음해 1월부터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명예퇴직자 8300여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사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도 폐지했다.
명예퇴직자와 재직자들은 무차별적인 인사에 항의했으나 KT는 노조 측과의 합의를 거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노조와 사측이 밀실협약을 거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현직 노조원들은 노조와 정씨 등 간부들을 상대로 "노조원 각 1명당 2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 2심은 "중요 근무사항에 대한 사측과의 합의는 총회를 거쳐 노조원들의 의사를 수렴해야 한다는 규약에 비춰, 총회 없이 진행한 노사간 합의는 노조원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으나, 위자료는 노조원 1인당 20만원~30만원씩으로 산정했다. 이에 정씨 등이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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