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공무원 시험을 보고 온 딸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나 있었다. 흔히 말하는 ‘공시생이 되어 도서관과 집을 오가는 생활의 연속에서 오는 긴장감과 피로가 겹쳐 있었다. 공시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고 합격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18년 서울시 7급/9급 공무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34대 1이었다. 해마다 약간의 경쟁률 차이는 있겠지만, 엄청난 경쟁률이 공시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저녁이 있는 삶’을 찾는 이들의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도 않다. 2009년 정부가 공무원 시험 응시 상한 연령을 전격 폐지하면서, 조기 퇴직 등 고용불안을 느낀 세대까지 공무원시험에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기업에 다니다 명예퇴직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어느 50대 초반의 사례가 신문에 소개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투철한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전문성과 꿈을 살려 창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의 패기도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가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대학에 진학하고도 휴학 한 두 번 하는 것이 보편적인 대학생의 선택처럼 되어 버렸고, 졸업 후에도 고용불안으로 야기되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 이들의 일상을 짓누르는 형국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또 다시 공무원시험 준비와 비교적 안정된 직장인 공사나 대기업 취업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현상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10.3%다. 이 수치는 전년보다 다소 하락한 것이지만, 2013년까지 9%대에 머물렀던 것이 2014년 10%대에 진입한 이후, 2015년 10.5%, 2016년 10.7% 등으로 꾸준히 상승하다 지난해 들어서야 미미하게나마 다소 상승세가 꺾였다. 그러나 “유사 이래 취업하기가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여전히 진행형.
문재인 정부가 26일에 경제·일자리 수석을 교체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청년들의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이 늦어지고, 더하여 출산율도 현격히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어디서부터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 청년들의 팍팍한 삶을 반영하듯, 생산 가능 인구(15~64세)의 비율 또한 급속하게 줄어들어, 이른바 ‘인구절벽’이 우리의 미래를 가로 막고 있다는 점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할 커다란 장벽이라는 것도 상기하길 바란다.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것은 단순히 고용 불안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원인들과 복합해 나타나는 현상이겠지만,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OECD 34개국 중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인 1.05명이다. 한 명의 가임여성(15~49세)의 평균 출생아 수가 겨우 한 명 정도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2030~40년에는 생산 가능인구가 영(零)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미래세대라는 것이 존재할까 하는 불안은 필자만의 기우가 아닐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를 잠시 빌려서 생각하면, 턱없이 비싼 주거비 또한 젊은이들에게는 벅찬 장애물이다. 5년 이하 신혼부부의 출생아 수 비교에서, 자가를 소유한 부부의 자녀수가 전세나 월세를 사는 부부의 자녀수보다 더 많았는데, 앞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도 1.75명으로 1.56명의 전·월세 거주자보다 많았다. 거주의 안정성이 주는 효과이다. 출산계획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의 출산율이 겨우 0.84명이라는 숫자는 그러한 사실을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가 저출산을 극복하게 위해 투자한 돈은 무려 80조원. 더불어 최근 저출산 대책으로 더 많은 돈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행해왔던 여러 저출산 대책처럼 백약이 무효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피로하다. 하루빨리 이들의 고민을 보듬고 이들에게 제대로 된 삶의 가치와 보람된 삶의 의미를 심어주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성세대의 숙제 가 무거워 보이는 2018년의 여름이 흘러가고 있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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