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아파트값 떨어질까 '안전' 쉬쉬
2018-04-02 15:02:42 2018-04-02 15:02:50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소유에 따른 부담이 큰 것이 집, 주거다. 집을 고를 때 따지는 것이 많다. 아름다움, 가격, 안전, 주변 환경 등이다. 이 중 최우선을 꼽는다면 안전이 아닐까 싶다.
 
"안전한 아파트에 살고 싶어요."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재건축 여부가 불투명해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 문구다. 재건축 연한을 채운 아파트 단지들은 지난달 갑작스런 정부 규제로 하루 아침에 재건축 희망이 사라졌다. 이들은 최우선 가치로 안전을 내세우며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재건축 안전기준 강화의 취지는 무분별한 재건축 사업을 막자는 데 있다. 다만 행정예고 10일 만에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며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 정부 대책에는 박수치기 어렵다. 반대로 안전을 강조하며 반발하는 주민들의 말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집값 떨어질까 안전에 쉬쉬하는 주민들의 행동을 목격한 적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아파트 사례다. 수년간 인근에 살았던 기자는 택시 기사를 통해 해당 아파트에 부실, 하자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 지인을 통해 해당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는 주민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택시기사에게 들은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주민은 "살기 너무 좋은 아파트다. 3년간 살았지만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열명 중 아홉명이 얘기하던 부실을 부정했다.
 
지나친 긍정은 의심을 낳는다. 취재 결과 이 주민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주가 불가능한 정도의 습기와 곰팡이, 악취로 주변 주민들에게 고통을 호소한 것이 확인됐다. 얼마 후 다른 동으로 이사했고, 이후 아파트 하자에 대해 함구한다는 것이다. 해당 시공사에서 이사 비용까지 주며 집을 바꿔줬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른 아파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민 커뮤티니에서는 하자와 불편을 얘기할 수 없다. 이를 밝힌 주민은 아파트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불편을 호소하는 글은 찾아 볼 수조차 없는 커뮤니티도 많다. 간혹 올라온 부정적인 글은 주민 대표들이 확인 즉시 삭제한다. 안전한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주민들이 오히려 안전에 기본이 되는 부실, 하자 문제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있는 셈이다. 이는 건설사들로 하여금 시공 후 관리, 책임에 대해 소홀하게 만든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안전한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호소에 진정성이 있어야, 시공 후 관리 부실에 대한 건설사의 책임과 현실에 맞지 않는 정부 정책 등의 비판에도 무게가 실릴 것이다.
 
임효정 산업2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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