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다시 4월
2018-04-02 06:00:00 2018-04-02 06:00:00
구태우 산업1부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3시47분 많은 국민의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다. 163명(승무원 5명 포함)의 승객을 태운 '핑크 돌핀호'가 전남 신안 앞바다에 좌초됐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들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의 기시감이 들었을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이 희생된 참사가 다시 신안 앞바다에서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163명 전원 구조됐고, 승객 1명만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운이 좋았기 때문 희생자가 없었던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 4년 만에 비로소 해양조난 사고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었다. 단언컨대 앞으로 누구도 대피하지 못한 승객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지 않을 것이다. 머뭇거리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구조작업을 할 거라 생각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참사가 있어야 배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웠다. 304명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된 대가로 안전관리 체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큰 대가가 있을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안전사고는 되풀이 됐다.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졌고, 지난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51명이 희생됐다.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갈 길이 먼 셈이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지난달 국내 항공사 조종사와 승무원의 근무환경을 연속해 보도했다. 본지가 입수해 보도한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 구축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종사는 장시간 비행과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로 인해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조종사의 경우 피로도가 높았다. 비행 근무 후 반응속도와 수면의 질 모두 떨어진다는 실험결과가 보고서에 담겼다. 
 
노동자가 피로한 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만성피로는 과로사의 원인이다.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과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건 사용자의 의무다. 게다가 여객운송사업의 경우 과로는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지난해 7월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있었다. 기사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장시간 운전했다. 조종사와 승무원도 만성피로를 호소한다. 한 승무원은 "다음날 비행스케줄이 잡혀 있어 억지로 잠들려고 한다"며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는 게 아니라 자는 둥 마는 둥 한다"고 말했다. 피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귀국편 비행기에서 근무를 이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다. 항공기의 상태와 기상이 나쁜 상황에서 조종사의 컨디션까지 나쁜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조종사의 판단이 사고를 막는 열쇠가 될 수도,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보잉사에 따르면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항공사고 원인 중 피로가 두번째로 많다. 승무원의 피로 또한 중요하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승무원의 대처가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위기 때 승무원의 발빠른 대응이 희생자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승객은 조종사와 승무원에 생명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국토부는 1991년 이후 27년 만에 조종사의 비행시간과 휴식시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승무원은 이번 대상에서 빠졌다. 지난해 저비용항공사 조종사가 과로사하고, 승무원이 연이어 실신하는 사태도 항공법 개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정부가 칼자루를 쥔 만큼 승객의 안전과 조종사, 승무원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길 바란다. 
 
구태우 산업1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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