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육왕'과 혁신성장
2018-03-02 06:00:00 2018-03-02 06:00:00
작년 일본에서는 '육왕'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시청률이 10%만 넘어도 그럭저럭 성공작이라고 평가 받는 일본 드라마 시장에서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됐다.
 
내용은 이렇다. 100년째 버선을 만들어오던 코하제야라는 공장이 있다. 4대가 이어온 기업이라는 자부심과 최고의 버선을 만드는 기술력은 남았지만, 버선을 찾아 신는 사람은 계속 줄어만 간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육왕'이라는 이름의 런닝화 제작에 도전하게 된다. 마침 버선의 모양을 본 뜬 신발이 인간에게 가장 친화적인 주법을 익히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런닝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소재개발, 자금충당, 직원들의 희생 어느 하나 쉽지 않지만 결국 최고의 런닝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쓰러져가던 버선공장이 시장 1, 2위를 다투는 런닝화 메이커로 다시 서는 영세 제조업체의 성장 드라마다.
 
드라마답게 갈등구조가 빠질 수 없었는데 바로 시장 1위 글로벌 스포츠브랜드와의 경쟁이었다. 고생 끝에 좋은 런닝화를 개발해도 신발이 필요한 마라톤 선수에게 닿지 못 한다. 1위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스폰서 제안을 밀어붙이는 대기업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다.
 
육왕의 기술까지 외면하지는 못 했던 대기업도 첨단장비를 동원해 런닝화 개발에 나서지만, 결국 육왕에 쓰인 신발 밑바닥 소재 특허를 가로채기하거나, 런닝화 천을 대주던 중소기업에 코하제야와의 거래를 끊게 하는데 주력한다.
 
혁신성장이 경제성장전략이 된 요즘 '기득권 깨뜨리기'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김동연 부총리가 경직된 사회보상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일찍이 강조해왔던 내용이지만 사실 누구도 토달 것 없는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기득권의 기득권이고자 하는 관성을 생각해보면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웠다.
 
하지만 육왕에서 그려지는 기득권의 모습, 즉 제품을 혁신시키거나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고 공정거래를 훼손하며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장면을 보면 정부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혔다. 불공정거래 적발, 특허보호와 금융지원 등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비지니스 모델 간의 충돌을 얼마나 잘 다스려 나가느냐에 달려있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있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비상상비약의 종류가 부족하고, 카풀 서비스(승차공유)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제대로 안착되지 않는 것 역시 기존 비지니스 모델과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 간의 충돌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규제개혁에 따른 손실보상체계를 도입하는 다양한 대안도 있다.
 
드라마 육왕에서 발에 맞지 않는 런닝화를 신고 달리다 부상을 당했던 마라톤 선수는 곡절 끝에 육왕을 신고 목표했던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다. 시대에 맞는 혁신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갈등 조율은 물론 이해관계자들의 현명한 양보가 중요한 때다.
 
한고은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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