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제강점기 일본시인들이 쓴 한국 관련 시를 읽으며
2017-07-23 06:00:00 2017-07-25 09:48:12
"경주는 좋은 고장인가보다/ 멀리 저 유명한 석굴암을 생각하며/ 나의 벗들은 모두 젊고 소탈하고 익살스럽다/ 온다면 흰밥에 /생선 대접하겠단다."
'경주' 전문
 
"얼룩 까마귀는 잎이 떨어진 외로운 나무 그 우듬지에서 울고, 사람 모양을 한 거대한 석상(石像) 그늘에서는 늑대라고 불리는 이리가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며 나타나기도 하였다. 게다가 오늘 더욱 국토의 어딘가를 숙명의 아씨는 달리고 있었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린 알몸에 가까운 모습으로, 울부짖으면서 줄곧 달리고 있었다. 악마는 더욱 더 잔혹한 발톱을 뻗어서, 그녀의 목 뒷덜미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후략)"
'조선' 일부
 
요즘 이런 시들이 필자의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 일본 시인들이 한국이나 한국인을 소재로 쓴 작품들의 일부다. 앞의 시는 1947년에 일본의 시인 오노 도자부로(小野十三郞, 1903-1996)가 출간한 '대해변(大海邊)'이란 시집에 수록된 시 '경주(慶州)'이고, 뒤의 작품은 1937년 일본의 잡지 '개조(改造)' 6월호에 발표된 시인 마루야마 가오루(丸山薰, 1899-1974)의 '조선(朝鮮)'이란 시의 일부이다. 두 작품 모두 일제강점기가 시의 시간적 배경이다.
 
'경주'는 시인 오노가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과의 만남, 특히 경상북도 경주 출신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재로 하여, 그들과 이별을 할 때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즉,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쓴 글이다. 작품 속에는 경주 사람들과 나누었던 따뜻한 우정 같은 것이 배어 있다. 오노는 1977년부터 2년간 ‘일본현대시인회’ 회장을 맡았던 일본에서는 잘 알려진 시인으로, 특히 한국인과의 인연을 여러 편의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조선'은 시인 마루야마가 일제 강점기 당시의 한국인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시에 등장하는 ‘아씨’는 한국인을 상징하는 시어이고, ‘이리’ ‘악마’는 일제를 뜻하는 말로 각각 해석하여 읽으면 그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즉, '조선'은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는 한국인의 모습을 일본 시인의 시각으로 그려낸 것으로, 작품이 발표된 시기가 1937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슬 퍼런 일제의 검열을 어떻게 뚫고 이 시를 발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마루야마 역시 일본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많은 시적 성과를 낸 한국과는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이 두 시인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한국인에 대한 우정과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이 두 시인 외에도 당시의 일본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에는 한국과 한국인을 시적 주제나 소재로 삼아 노래한 품격 높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일부 한국인을 비하하는 시를 쓴 작가도 있었으나, 여러 시인들의 작품 상당수는 한국과 한국인을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품어주고 일제의 압박에 항거하는 글을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부 시인들은 한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는 작품을 써서 명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왜 하필 이런 시를 펼쳐보고 읽어보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으나, 필자의 눈에는 당시를 대표하던 일본 시인이나 일본 작가들과 같은 지식인들이 한국이나 한국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리기보다는 긍정적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이미지로 그렸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에서 뜨겁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아직도 한·일 양국은 민감한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처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생각은 혼자만의 편견은 아닐 것이다. 앞의 작품들과 같은 성격의 시를 다시 한 번 끄집어내서, 시의 행간에 깃든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시적 사유를 살피고 헤아리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아직까지는 이런 성격의 시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개되거나 보급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좀 더 한일 양국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공감하는 기회가 확대되어 평화로운 이웃으로 가는 거름처럼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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