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롯데그룹이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수십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업무를 봤던 그의 집무실을 빼고, 사실혼 관계로 주목받은 서미경씨가 소유하던 식당들도 퇴출시키기로 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7월부터 롯데호텔서울 신관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면서 신격호 명예회장 측에 거처를 구관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신 명예회장에게 롯데호텔서울 신관 34층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며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다.
신 명예회장은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른바 '셔틀경영'을 하던 시절부터 이 호텔 신관 34층을 집무실로 사용해왔다. 당시부터 집무실에 딸린 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회의와 접견 등으로 일과를 보냈다.
특히 이곳에서 주요 계열사 대표들로부터 주요 경영현안과 관련된 업무보고를 매일같이 받아왔기 때문에 신 명예회장은 남다른 사연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건강이 악화된 2011년부터는 아예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스위트룸을 개조한 34층은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돼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VIP 전용 엘리베이터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일반 고객용 엘리베이터를 탈 경우 34층 출입이 허가된 카드를 찍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한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공간의 주도권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였을 정도다.
일각에선 신 명예회장이 잠실 롯데월드타워 114층으로 이주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지만 이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 명예회장을 보호하고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 신 명예회장의 건강을 이유로 롯데월드타워 이주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20일 전후로 서울 중구 롯데그룹 본사 26층의 집무실을 롯데월드타워 18층으로 옮기고, 본인의 거처도 이르면 8월 종로구 평창동 롯데캐슬에서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시그니엘 레지던스'로 옮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호텔서울 34층은 신격호시대를 이끌어온 롯데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라며 "롯데가 신격호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이자 셋째부인으로 세간의 주목받았던 서미경씨 소유의 식당들도 롯데에서 전부 퇴출된다. 서 씨가 운영 중인 식당들은 올해 초 롯데백화점과 계약 기간이 종료됐지만 반년 넘게 영업을 지속해왔다. 그러다 퇴점을 결정한 것에 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서 씨가 소유한 유기개발이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등에서 10년 넘게 운영해 온 4개 음식점이 내년 1월까지 모두 퇴점한다. 롯데백화점은 잠실점의 유경은 올해 9월, 본점 유원정과 마가레트, 잠실점 유원정은 내년 1월 말에 퇴점하기로 유기개발과 합의했다.
백화점 식당가는 외식업체들이 입점 1순위로 꼽는 노른자위다. 쇼핑객을 비롯해 영화관과 문화센터 등을 찾는 유동인구가 많아 입점만 하면 일정 규모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롯데백화점 식당가에 입점하려면 총수일가와 특수관계가 아니면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돌기도 했다.
유기개발은 1981년 설립한 외식업체로 서미경 씨의 오빠인 서진석 씨가 지난해까지 대표이사로 있었다. 서 씨의 딸인 신유미 씨는 유기개발의 이사로 올라있다. 유기개발의 2015년 매출은 125억 원, 순이익은 11억 원이었다. 서 씨가 10년 넘게 롯데백화점 내 영업으로 챙긴 금전적 이익은 1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서 씨와 거래 관계를 끊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당시 롯데백화점은 유기개발이 영등포 롯데백화점 지하 1층과 지상 3층에서 운영해오던 롯데리아 매장 2곳과 거래 계약을 종료하고 직영으로 운영했다. 또 같은 점포 10층 식당가에 있던 유원정도 철수시켰다.
이보다 앞서 서씨 모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유원실업과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최대주주인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는 롯데시네마에서 팝콘과 음료수 등을 판매하는 매점을 독점 운영하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이자 사업권을 내려놓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퇴진이 이미 공식화된만큼 그의 집무실의 존재 이유도 사라진게 사실"이라며 "구설수에 줄곧 오르내리던 서미경씨의 그룹 내 흔적까지 지우며 본격적인 신동빈 체제 알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왼쪽)과 그와 사실혼 관계로 알려진 서미경씨.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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