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관계개선을 하려면 한국이 장애물을 제거하라“며 사드배치를 철회를 강하게 압박한 시 주석에게 적잖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문 대통령이 시 주석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잔뜩 품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이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정부는 사드배치 철회가능성을 차단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배치를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을 깨는 미국의 군사적 도발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중국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지 궁금하다.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 지도자를 만나기 위해 준비한 카드는 없었다. 소위 ‘진정성있게’ 대화하다보면 시 주석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기대감이 청와대와 우리 외교당국의 카드였던 것 같다. 청와대와 정부 측 어디에서도 시 주석과의 회담에 앞서 사드갈등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사드배치 결정 직후인 지난 해 이맘 때 김장수 주중대사가 중국의 사드보복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며 중국의 경제보복가능성에 대한 한국언론의 기사가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는 투의 인식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드는 한반도에 재앙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재로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서라도 사드를 되돌려 보낼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중국의 보복조치는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는데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을 수 없는 속수무책, 또한 현실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배치 철회가능성을 시사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사드문제 해법을 모색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취임이후 문 대통령은 결국 사드배치는 되돌릴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미국의 우려를 불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한중정상회담을 면밀하게 지켜본 중국이 취하고 있는 보복조치다. 중국 사람들이 종종 쓰는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君子報仇 十年不晩)는 속담이 있다. 이를 사드갈등에 비쳐보면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비관적으로만 바라 볼 필요는 없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덕목 제 1호가 ‘꽌시’(關係)아니었던가. 꽌시는 여전히 중국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몇 년 전 당시, 한중관계의 발전이 과거와 달리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 근거는 박 전 대통령과 시 주석과의 오랜 인연이었다. 그 오랜 인연이 쌓여 시 주석과의 깊은 ‘꽌시’가 형성됐다고 봤다. 그런 꽌시를 한중관계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국가적 손실이었다.
꽌시는 급하게 형성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서로를 이해하면서 자기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 호형호제하는 꽌시가 되는 것이지 이해관계를 따지는 관계라면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흔히 중국을 잘못 이해하는 한국 사람들은 20여 년 전 중국에 투자를 했던 사업가들이 하던 방식을 중국 꽌시를 쌓는 가장 빠른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몇 차례 술자리를 하면 어느 사이 ‘라오펑요우’(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불리면서 친해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중국사업을 해오던 한국기업가들은 대부분 쪽박을 찼다.
중국과 꽌시를 맺는 방법은 천천히 신뢰를 쌓는 것 외의 정도는 없다. 특히나 국가간 꽌시는 더 더욱 지도자간의 신뢰축적을 통해 불가피한 속사정을 이해시키고 그런 바탕에서 상호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군자의 복수론’을 상쇄할 만큼 중국인의 귀에 쏙 들어갈 만한 경구는 호리공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이 G2 경제대국이 되기 전까지 중국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중관계를 '호리공영(상호이익과 공동번영)'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곤 했다. 이는 서로가 협력을 통해 이익을 얻어서 함께 이긴다는 뜻의 ’윈-윈 관계‘의 중국식 표현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중국지도자들이 이런 표현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한국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국기업들이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호리공영의 관계를 재구축하려면 중국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보다 치밀한 내부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과거 오천년 역사보다 더 깊은 꽌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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