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인디언들의 전설에 따르면 "대지는 인류의 어머니다". 우리는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기술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자연에서 얻는 혜택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연에서 식량과 물, 목재 그리고 연료를 얻는다. 떠오르는 산업 유망주인 유전자원도 자연이 제공하는 공급 서비스에 해당한다. 숲이 맡고 있는 탄소동화 작용, 습지가 맡은 수질정화 작용, 벌이나 나비가 담당하는 꽃가루받이 등은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조절 서비스에 해당한다.
자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땅에서 솟구치는 지하수는 물질의 순환을 돕는 지하대수층의 지지 서비스 기능 덕분이다. 대지를 비옥하게 유지하는 토양이나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서식지도 지구 생태계를 지지한다. 아름답고 건강한 자연에서 누리는 체험과 치유, 관광과 영성활동 등은 자연이 제공하는 문화 서비스이다. 국제연합(UN)의 '새천년 생태계 평가보고서(2005)'에서는 공급과 조절, 지지, 문화 등의 4가지 서비스를 '자연의 혜택' 즉 생태계 서비스라고 지칭했다.
자연의 혜택은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벌과 나비가 없으면 그 수많은 수정을 누가 할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처럼 농부들이 붓으로 꽃가루를 발라주는 일이 생긴다면, 농산물의 수확량 자체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도시인들은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워야 할 것이다. 탄소동화작용이 없다면 온실가스가 더욱 넘쳐 숨이 막힐 것이다. 늪이나 강 그리고 갯벌에서 이뤄지는 수질정화 작용이 없다면, 인공정화 장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위대하고 자비로운 각종 서비스는 인류가 받는 최대·최고의 생태적 편익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태계 서비스에 무관심하거나 자연에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손'이 온 집안을 굴리듯이 자연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서비스를 베풀면서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인류는 자식들이 으레 어머니에게 그러하듯이 가끔씩 자연에 감사할 뿐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낸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 용어로 '무임승차'라고 부른다. 스포츠센터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를 받으면 비용을 치르면서 자연에서 받는 서비스에는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생태계가 제 기능을 수행하면서 인류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유지되도록 비용을 치러야 한다.
4인 가족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정화하려고 하면 30년생 나무 100그루가 필요하다. 가족 전용 숲과 나무들이 있어야 차도 굴리고 냉·난방 시설도 돌릴 수 있는 셈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비영리조직(NPO) 등은 환경유지를 위한 비용(환경비용)을 치른다. 물론 정부는 침해된 환경을 복원하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내는 세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업이 환경비용을 내거나 개인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기 위해 국민신탁 등 NPO에 기부하는 활동을 사회공헌활동(CSR)이라고 부른다. 정부 예산이나 민간기부를 재원으로 하는 환경비용 덕분에 우리 생태계는 그럭저럭 돌아간다.
선진국에서 '중류층'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중형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를 굴리면서 여가활동을 즐기며 매주 외식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 만족에만 머물면 중류층이 아니라 중산층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사회를 지탱하는 중류층에 속하려면 가족들이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고, 두 가지 이상의 신문을 구독하며 식탁에서 정치를 화제로 삼을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선을 베풀 줄 알아야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은 최고의 덕목으로 꼽혔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는 일도 희귀해졌고 신문도 모바일 기사로 대체되었다. 악기는 노래방이 대신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자선의 미덕도 사라졌을까.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인심과 메말라가는 세태를 보자면 그럴지 모른다. 그럼에도 사회적 취약계층이나 난민을 위한 자선은 타인과 인류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미덕이다. 특히 가중되는 환경오염 속에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허덕이는 자연과 생태계를 위한 기부는 자선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책무다. 현세대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의했으면서도 지속가능의 요체가 미래 세대의 몫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은 망각하면서 지낸다. 자연의 혜택에 대한 기부는 저승이 아닌 이승을 천국으로 만드는 비밀의 열쇠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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