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착한 놈'이 1등 하는 세상 만들어야
2017-06-05 06:00:00 2017-06-05 06:00:00
대통령이 바뀌고 한 달 남짓이 되었다. 새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구속 피고인으로 전락한 전 대통령과 그 공범자들은 여전히 남 탓으로 일관하며 재판에 임한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국가의 요직에 들어오고, 시민들의 환호와 바람도 이어진다. 구시대의 청산과 새시대를 위한 개혁을 맡아서 해낼 사람들에 대한 기대는 도무지 식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에선 새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성원이 이토록 뜨거운데, 다른 한편에선 어떻게든 옛 시절의 영화와 권세를 잃지 않으려는 술수가 꾸며지고 있다. 세상이치란 게 늘 그렇듯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좋은 것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그 성취를 저지하려는 적폐세력의 준동은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어질 것이다.
 
적폐를 쌓으며 스스로 저지른 일이 있고, 그 일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목격하니 그들은 더욱 맘이 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고 찍어내려 하는 것은 정치보복이자 국민분열”이라고 외쳐댄다. 그럴싸하게 국민통합을 앞세우지만 결국 스스로 구시대의 오물이자 적폐세력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될 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첫머리로 시작된 인사청문회에서 구 여당 소속 의원들이 내뱉는 발언과 제시하는 잣대는 스스로의 과거를 검증하는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정권보위에만 급급하던 자들이 아무런 반성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공직자의 자세와 도덕성을 설파하는 그 뻔뻔함에는 치가 떨릴 지경이다.
 
어디 그 뿐일까. 올해 초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로 꼽힌 개혁대상은 검찰, 관료, 언론, 재벌의 순이었다. 검찰이야 그렇다 치지만, 언론과 재벌보다 관료 개혁을 더 시급한 것으로 꼽는 응답자가 많았다는 게 놀랍다. 주권자들은 승진과 보신을 위해 기꺼이 영혼을 없애고 지록위마에 앞장섰던 좀비 관료들의 행태에 이처럼 깊은 분노로 답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나쁜 관료들은 더럽혀진 몸과 빠져나간 영혼을 정비하지 않은 채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변신하고 있다. 5.18 정신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는데 앞장섰던 공무원들이 5.18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수천장의 현수막을 전국에 내걸도록 하고, 고위직이 손수 나서 시민들을 안내하고 행사장을 정리하는 등으로 표변한 모습을 보이자 한 공무원이 뉴스타파에 보냈다는 글이 너무도 절실히 다가온다.
 
“정말 참을 수 없습니다. 토악질이 나와요. 이들은 세상이 바뀌니 또 빠르게 세상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반성도, 자조도, 사과의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듭니다. 국가보훈처는 그동안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 거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이게 어찌 보훈처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이 집회 현장에 살수차와 차벽을 배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며 짐짓 인권경찰의 모양새를 강조하면서도, 진상규명은커녕 진심어린 사과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임기를 채운다며 천명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상규명에 앞장서기는커녕, 청문회에서조차 유족들을 비웃던 구조 실패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승진한 해경의 모습과, 세월호 특조위를 식물로 전락시키는데 앞장선 당사자가 낙하산 인사를 통해 산하기관장 자리를 꿰찬 모습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적폐의 총화인 박근혜조차 근절하겠다던 적폐의 상징 ‘관피아’의 모습을 그토록 유감없이 재현하고 반복하는 저 철면피와 후흑들의 모습을 우린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니 저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의 제12장 제목, “착한 놈이 일등 한다(Nice guys finish first).”가 다시 떠오른다. 새시대는 분명 온갖 편법과 꼼수로 일등을 가장했던 나쁜 놈들을 일소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착한 이들이 일구어 가는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 진영논리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킨스가 제시한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상대방이 배신할 때는 보복하지만 내가 먼저 배신하는 일은 없으며(nice), 배신했던 상대방이 반성하고 협력 행동으로 돌아오면 바로 용서해주고(forgiving), 이 전략을 취할 때 내가 얻는 이득은 상대방보다 크지 않지만 이를 시샘하지 않는다(not envious)는 원칙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도킨스가 강조한 것처럼, 착한 전략의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오랜 기간 일관되게 이 전략을 반복 구사하며, 그 전략을 따르는 사람의 비중이 일정 임계치를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용서의 전제는 깊은 반성이며, 배신하는 자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세상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기에 우리가 기억하고 해내야 할 일은 아직도 여전하다. 더러운 것들은 절대 더러운 자들이 치우지 않는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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