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홍준표의 멸시와 귀족노조
2017-05-01 15:20:11 2017-05-01 19:16:14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이별은 아프다. 노조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동지' 간의 이별도 헤어진 연인처럼 아프긴 마찬가지다. 기아차지부가 지난달 28일 사내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에서 분리시키기로 결정했다. 조합원 71.7%가 비정규직 노조 분리에 찬성했다.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내쳐졌다.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 사는 건 갈등의 연속이다. 소속과 신분이 다른 노조 둘이서 지난 10년 동안 '불안한 동거'를 이어왔다. 매년 사측과의 교섭 때마다 불협화음이 났다. 지난해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2조4614억원. 공로는 같다고 해도, 기아차 노동자와 인력파견 수준의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들이 보는 임금 교섭합의안에 대한 간극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고 앙금도 쌓였다. 2014년 9월 법원이 “(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한 이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9개월 후 비정규직 노동자 한규협씨와 최정명씨는 정규직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364일 동안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기아차는 물론, 정규직 노조에게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비정규직의 아픔은 그렇게 밥그릇 싸움으로 비화됐다.
 
결국 갈등이, 욕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시 광야로 내쫓았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최종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은 노조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처우와 관련된 것 중 원청인 기아차의 허락 없이 되는 건 없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손을 잡고 기아차와 싸워야 정규직 전환이든 처우 개선이든 얻어낼 수 있다. 노조의 이번 결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비정규직 노조가 쫓겨나던 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5차 대선 TV토론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호되게 비판했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파업을 일삼고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의 축'처럼 표현했다. 비판이 아닌 혐오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이번 결정으로 홍 후보의 '귀족노조 기득권'은 설득력을 얻게 됐다. 윤기찬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튿날 “노조가 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간 사측과의 교섭 때마다 비정규직 처우를 앞세우고, 결과적으로는 제 잇속만 챙겼던 일부 정규직 노조의 행태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를 태세다. 과거와 변함없는 투쟁 일변도의 노동계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비정규직 문제를 협상 명분으로 활용, 사측과 담합하는 행태는 노조 존립 근거의 정당성마저 위협한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외면하는 현실에서 홍준표 후보의 멸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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