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5월 치르게 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중국일 것이다. 중국 인민들은 이웃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이 인용돼서 파면당하고 곧이어 검찰수사를 통해 구속되는 일련의 과정을 충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혁명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별다른 정치적 소용돌이 없이 평온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중국은 충격과 두려움이 혼재된 경이(驚異)로운 시선과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탄핵‘은 신중국에서도 벌어진 일이다. 문화대혁명 발발 초기인 1966년. 당시 중국 국가서열 1위 류샤오치(劉少奇) 국가주석이 백주대낮에 주석관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홍위병들에게 끌려나와 집단수모를 당한 끝에, 권좌에서 끌려내려와 숙청을 당해 옥사한 아픈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때 이후 중국에서는 최고지도자는 물론 중국을 이끄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중앙상무위원들에 대한 공개적인 사법처리는 벌어진 일이 없었다. 후진타오 시대의 폐막과 함께 퇴임한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에 대해 해외언론들이 엄청난 부패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일었지만 원자바오의 부패스캔들에 대해 조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난 최고지도자 그룹들에 대해서는 종신 정치적 예우를 대해온 것이 중국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취임직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대대적인 공직비리 수사에 나섰지만 정작 때려잡은 건 수많은 ’파리’(하급관료)와 저우융캉(周永康)전 상무위원으로 대변되는 ‘호랑이’(고위관료) 한 마리 뿐이었다. 저우 전 상무위원은 시 주석의 권력 장악을 방해한 정적집단의 대표주자였다.
중국이 다른 주변국보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과 대선과정을 더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사드배치’에 대한 한국정부의 입장변화를 기대하는 측면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가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등의 과정이 중국 인민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정치적 포석도 깔려있을 법하다.
우리는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 5천년 동안 중국의 이웃나라로서 우리는 소국의 설움을 당해왔으면서도 중국을 속속들이 파악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국‘ 중국의 기질은 요즘 회자되는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는 중국 무협지 속의 속담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듯이, 대국과는 거리가 멀다. ’군자의 복수론’은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다양한 보복조치를 당연시하는 논리로 연결된다. 중국인들은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다‘는 말도 자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군자는 조선의 선비와 통하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전의 사람을 가리키는데, 복수와 보복에 몰입하는 중국의 군자는 군자(君子)가 아니라 무협지 속 복수에 몰입하는 무림의 ‘무뢰배’나 ‘소인배’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불의에 대항하고 부패에는 철저하게 선을 긋는 것이 군자의 정신일 것이다. 이웃나라와 사사건건 ‘보복불사’ 운운하는 중국의 처사는,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강도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도 외면하면서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하면 삿대질하며 따지고 드는 중국인들의 경제관념과 맞닿아있다.
중국의 외교정책은 90년대 후반까지도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개혁개방이후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기 시작한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屈起)의 시대를 거쳐 ‘적극적으로 개입,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킨다’는 의미의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이제 중화주의의 실현이라는 야심만만한 ‘중국몽’(中國夢)을 실현시키기 위해 ‘유소작위’의 자세로 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각국 등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불사하고라도 ‘중국의 힘’을 과시하면서 굴기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맞설 수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 같은 국력을 갖출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군자’의 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중국의 ‘군자’(君子)는 패도시대의 ‘군자’(軍者)와 다를 바 없다.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성숙하고 정착된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갖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이다. 사드 보복조치의 하나로 간주되는 ‘한한령’(限韓令)의 속내 또한, ‘한류콘텐츠’ 속에 내재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일지도 모른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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