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반도체 공장 정문. 사진/SK하이닉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결국 '통큰' 결단을 내렸다. 10조원이 넘는 도시바 인수전에 참여키로 한 것으로 일본계 자본도 우군으로 포섭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날 일본의 재무적 투자자(FI)와 손잡고 도시바 메모리 낸드플래시 사업부문 인수 예비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중국계 기업들에 컨소시엄 형태로 자본력을 확충해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정부의 심사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복안으로도 해석된다.
입찰가는 10조원 이상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입찰 때는 3조원 수준을 제시했지만 매각 지분 확대에 따른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다. 앞서 도시바는 지난 2월 매각 때 19.9% 지분을 입찰에 부쳤다가 흥행에 실패하자 이번에 50% 이상, 최대 100%까지 지분을 확대하며 '장'을 키웠다.
SK하이닉스가 과감한 '베팅'에 나선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의 최 측근이자 그룹 내 인수합병(M&A) 전문가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이번 인수전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박 사장이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과 최근 도시바 인수 관련 일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면 반도체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톱2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이미 세계 2위이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5위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낸드 시장에서 도시바는 18.3%의 점유율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9.6%에 그쳤다. 삼성전자가 37.1%의 압도적 점유율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 합치면 단숨에 2위에 올라 1위와의 격차도 좁힐 수 있다.
이번 입찰에는 SK하이닉스 외에 대만 홍하이, 중국 칭화유니그룹,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 웨스턴디지털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도시바 인수가 반독점 규제에 걸릴 수 있어 장외 관전 중이다.
그러나 중화권 기업에 도시바 낸드 사업이 인수되면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삼성전자에게도 치명타다. 과점 구도인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신규로 진입하게 되면 결국 양 측 모두에게는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는 중국이 도시바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 뒤 자본공세에 나서면 공급과잉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도 기술 안보 차원 등에서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이 중국과 대만에 팔릴 가능성에 대비해 심사 과정에서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맥락으로 일부에서는 일본 산업혁신기구(INCJ)를 중심으로 한 민관펀드가 인수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일본 합작 투자 시도는 도시바 인수전에서의 정성적 평가 우위 차지를 위한 고민이 스며들어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도시바는 오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메모리 사업부문의 분사를 결의한다. 이후 6월쯤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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