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쌀·소고기 '총동원'에도…패키지딜 '빨간불'
카드 다 꺼낸 한국…농산물·무기 압박 '첩첩산중'
2025-07-28 18:16:12 2025-07-28 18:41:02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정부가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의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까지 제안하며 막판 협상에 나섰습니다. 조선·농산물·비관세 장벽을 아우른 맞춤형 패키지를 제시했지만, 앞서 합의를 이룬 일본·유럽연합(EU)에 비해 협상 지렛대는 제한적입니다. 방위비 분담금까지 포함한 '경제안보 빅딜' 구상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성사 가능성은 작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마가' 트럼프에 "마스가"…판세 뒤집기 '안간힘'
 
28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진행한 한·미 산업장관 협상에서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사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 이를 뒷받침할 정부 주도의 공적금융 지원이 골자입니다. 
 
한국은 미국 측에 수백억달러(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으며, 향후 협상 과정에서 협상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금융 지원에는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 기관이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미국 필리조선소처럼 현지 조선소를 국내 기업이 추가 인수하거나,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등 조선소 설비를 확장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정부는 MRO(유지·보수·운영)를 비롯해 현지 선박 건조,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 미국 측이 요청해온 협력 방안도 함께 제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조선업 부흥' 목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산업 동맹이 한국이란 점을 부각한다는 전략입니다. 단순히 대규모 자금만 제시한 일본과는 차별화된 방식입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의 해양 지배력 복원' 행정명령을 통해 조선업을 "국가·경제 안보의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습니다. 해당 행정명령은 해양 전력 강화를 위한 함정 건조 역량 확보, 민간 조선소 육성, 조선업 관련 기술 주권 확보 등을 주요 목표로 담고 있는데요. 이를 실현하려는 방안으로 '동맹국과의 산업 협력'도 공식 언급됐습니다. 
 
조선업 재건은 단순히 경제적 목적을 넘어, 미국이 인도·태평양 해양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입니다. 앞서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중국 해군은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전투함 수에서 미국 해군을 능가했다"고 평가했고, 미 국방부도 CRS에 제출한 자료에서 "중국 해군은 항공모함, 잠수함 등 370척 이상의 함정을 보유한 세계 최대 해군"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조선소 노후화, 인력 부족 등으로 해군·해안경비대의 핵심 군수함조차 독자 생산이 어렵습니다. 지난해 신규 수주 선박이 고작 2척(전 세계 기준 1910척)에 불과할 정도로 산업 기반은 무너진 상태입니다. 
 
해군 전력 강화를 하려 해도 "자국 내에서 배를 지어야만 한다"는 법적 제약(존스법)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이 법 개정은 거의 불가능한데요. 조선업계·해운노조 등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민주·공화 양당 모두 보호무역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수십 년간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을 '강제하는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단기적으로는 협력을 통해 민간·군용 선박을 확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조선업 역량을 키워 자립하겠다는 목표인데요. 여기에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협력 파트너입니다. 
 
선박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한국에서 생산한 뒤, 미국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쓰면, 미국 현지 조선소가 빠르게 조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존스법으로 인한 제약 역시 사라집니다. 이 모듈화·블록 조립 기술에서 한국 조선 3사(HD현대·삼성중공업·한화오션)는 글로벌 선두권 수준입니다. 
 
다만 미국이 실제로 한국과의 조선 협력에 얼마나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는지는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실효성이 검증될 전망입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쌀 수입 확대, 사실상 '상수'…30개월 소고기 방어도 '불투명'
 
정부는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에 일부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모양새입니다. 일본에 이어 EU까지 무역 합의를 끌어내면서, 통상당국 운신 폭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일본이 쌀 시장 전면 개방 대신 쿼터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은 만큼, 우리 정부도 쿼터 조정 등으로 미국산 쌀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고기 시장 개방 압박을 지속하는 데다, 일본(약 5500억달러·751조원)에 준하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어,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는 과거 광우병 사태 당시의 사회적 반발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도 결단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측 압박이 매우 거세고, 구체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요구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국민 산업 보호를 위해 양보 폭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5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협상 품목 안에 농산물이 포함돼 있다"고 언급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현실적인 협상 압박과 대응의 어려움을 인정한 대목입니다. 
 
우 수석은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등이 협상 테이블에서 함께 논의되느냐'는 질문엔 "그 문제도 협상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어느 수준에서 어느 정도 협상이 진행되는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가장 큰 기준은 국익"이라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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