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가짜 주장과 가짜 법리
2017-03-07 07:00:00 2017-03-07 07:00:00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전직 감사원장과 전직 헌법 재판관, 유명 변호사 등 기라성 같은 법조인 10인이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의견'을 냈다. 군데군데 대통령 탄핵이 '적법절차 위반'이라는 표현들이 있다. 나는 과거 '적법절차(Due process of the law)'를 주제로 논문을 썼던 터라 흥미롭게 읽었다. 이분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지금 국회와 특검, 헌법재판소 등 헌법을 보장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오히려 법치국가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정말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정말 그럴까?
 
전직 감사원장 등 10인의 주장에 따르면, 우선 국회는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했다. 또 특검이 사건을 조사하기 전에 탄핵소추가 발의되었고, 국회가 탄핵사유를 '묶음'으로 표결했으며,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미르재단의 설립은 정당하고 헌재 재판관 8명의 심리는 불공정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4조와 연방대법원 판례로 정립된 적법절차는 "'사전통지(Prior notice)'와 청문(Hearing) 없이는 누구든지 생명과 자유,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요건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관해 우리나라 국회의 탄핵안 결의는 사전통지(Notice)에 해당하고 헌재의 심리(Hearing)는 청문에 해당한다. 지금 국회와 헌재는 대강의 흐름에서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법조인들의 주장들에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먼저 증거재판주의는 헌재의 몫이다. 또 특검은 탄핵심판의 요건이 아니며, '낱개' 또는 '묶음' 표결을 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의회의 재량이다. 아울러 헌법은 법률 위반도 탄핵사유로 꼽으며, 미르재단의 설립은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헌재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재판관 3인씩 추천했기에 지금 헌재 재판관의 구성과 그들의 심리는 불공정하지 않다. 
 
'탄핵 전에 대통령이 하야하면 탄핵심판이 종결된다'는 해석도 진짜 법리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해당 규정이 없어 이런 해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법은 동법이 규정하지 않고 있는 사항에 관해서는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있어 혼선이 빚어진다.
 
당연기각설은 탄핵 대상이 없어지면 '소의 이익'이 없어지므로 기각한다고 주장한다. 민사소송은 그렇다. 하지만 형사소송에서는 '소의 이익'이 없어지지 않는다. 행정법상 공무원 징계절차에서는 당사자가 사직해도 파면사유가 인정될 때에는 파면한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제인 로(Jane Roe)라는 여성이 주 법무부 장관인 헨리 웨이드(Henry Wade)를 상대로 낙태를 금지한 주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을 냈을 때, 소송을 벌이던 중 로가 아기를 낳는 일이 생겼다. 이에 낙태 위헌판결의 실익이 없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은 로의 손을 들어줘, 낙태는 위헌이라는 종국판결을 내렸다.
 
탄핵은 직무수행의 적절성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이며, 당사자의 비리 여부가 심판의 목적이다. 헌법이나 법률상 당사자의 비리가 존재하면 '소의 이익'이 있다. 탄핵은 인용될 경우, 파면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므로 헌재는 당사자의 사직과 관계없이 종국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리를 저지른 고위직 공무원을 공무원법에 따라 파면할 기회가 증발해버린다.
 
'앞뒤 틀린 대통령 측의 월권'도 문제다. "나중에 가서 먼저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지 말라. 무효다"라는 로마 법리를 금반언(禁反言, Estoppel)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대통령 측은 "이정미 권한대행 퇴임 후에 탄핵심판을 선고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으로서는 불가능하고 피청구인으로서도 불가능한 월권이다. 며칠 전까지 대통령 측은 9인의 재판관 전원이 탄핵 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권한대행 퇴임 후 선고"를 운운하는 것은 금반언이다.
 
국회의원까지 지낸 대통령 측의 손범규 변호사는 "탄핵이 각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결정과 기각만을 규정한다(제53조). 탄핵심판에는 형사소송법이 준용되는데(제40조), 이 법에는 각하가 없다. 공소절차가 위법무효면 기각판결을 내리고(형사소송법 제327조), 공소사실이 범죄가 아니면 기각결정을 내린다(형사소송법 제328조).
 
헌법재판소법이 준용하는 민사소송법은 소(訴)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각하한다. 각하할 때는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헌재가 탄핵심판에 관해 변론을 열고 증인을 신문하는 등의 절차를 진행하였으면 본안을 심리했음을 의미한다. 본안 심리 후에 각하결정을 내리라는 주장은 헌법재판소를 우롱하는 처사다. 왕과 신이 법 아래 있다면, 대리인이 이런 요구를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변호인이 법률가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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