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3월은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정협)가 개최된다. 두 회의 개최 기간 언론의 주된 관심은 시진핑 등 지도자들의 동정과 발언, 정부의 활동보고 그리고 양회에 대한 인민군중의 시선과 여론의 흐름에 모아진다. 당과 국가의 정책이 전국인대와 전국정협을 통해서 공개되고 이에 대한 인민의 기대와 반응이 양회의 중요 관심사기 때문이다.

당과 국가가 인민의 신뢰에 기반을 두고 유지되는 중국의 독특한 통치 메커니즘도 그 이유다. 당국가체제에서 인민군중의 절대적인 신뢰는 통치 기반을 다지는 핵심적인 관건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인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중국의 인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국민, 공민, 시민과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민 여동생처럼 중국에선 인민의 영웅, 인민의 아들, 인민의 총리 등 인민을 수식하는 용어가 폭넓게 사용된다. 현대 중국에서 인민이라는 개념이 계급 투쟁을 통한 역사성, 반제반봉건을 무너뜨린 혁명 전통,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개혁개방으로 전환한 정치적 격변 등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성숙해 온 사회성이 매우 높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을 가장 즐겨 사용한 사람은 바로 마오쩌둥이다. 마오쩌둥의 인민은 혁명 초기 누가 적이고 친구인지 민감한 혁명 과정에서 만들어진 용어로 매우 정치적인 개념이다. 지금도 큰 틀에서 유지된다. 시진핑의 인민 개념은 혁명성과 정치성, 계급성을 강조하던 마오쩌둥의 인민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진핑은 당과 국가의 존립을 위해 중국공산당 통치의 합법성과 정당성의 원천인 신뢰의 근간으로서 인민을 다시 재규정하고 있다.
양회를 맞아 지난 2일부터 중국공산당 기관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시진핑의 인문 풍모를 칭송하는 3분47초 동영상 '인민대표 시진핑'을 내보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이며 당중앙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기도 한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권력에 오른 시진핑이 사실은 인민대표라는 점을 부각하는 내용이다. 시진핑의 권위를 통해, 그리고 시진핑의 인민의 풍모와 지나온 역정을 통해, 당과 인민의 관계, 국가와 인민의 관계를 재규정하고 내실화해 유리돼 가는 인민관의 관계를 회복하고 강화해 국내외 난관을 돌파해 나가겠다는 또 다른 마오쩌둥식 ‘군중노선’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의 권위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 대내외 상황을 웅변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취약한 인민관계의 회복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신뢰’에 기반을 둔 당과 국가의 통치 합법성과 정당성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각급 영도간부는 물고기이며 인민군중은 물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목말라 죽는다”며 늘 인민과의 소통과 군중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진핑 역시 인민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는 점에서 인민과 중국 당국, 특히 간부들과 인민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중국공산당이 인민의 신뢰에 기반을 두는 통치 메커니즘으로 그 정당성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중국의 처한 상황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 중국 당국은 다양한 환경 변화에 직면하게 됐고 이러한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름 아닌 당의 신뢰 기반이 무너지거나 약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이 흔들리면 국가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당국가체제에서 새로운 신뢰관계 구축을 통한 당과 인민의 관계, 국가와 군중의 관계, 관원과 인민군중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재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시 중국 당국에게는 인민군중과의 관계에서 ‘물고기와 물의 관계(魚水關系)’를 어떻게 영원히 유지할 것인가, ‘기름과 물의 관계’를 시종일관 어떻게 경계하고 방지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물과 불의 관계’로 변화하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국 당국의 이번 동영상은 향후 전개될 중국 정치 변화에서 시진핑을 중심으로 당과 국가가 인민군중과의 관계를 물과 기름, 물과 불의 관계가 아닌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체제 강화를 통해 위로부터 강제된 이른바 ‘어수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중국 당국의 아우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인민의 신뢰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그 파고 또한 예측 불가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당과 국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강고한 신뢰관계가 위로부터의 강제와 동원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존경과 지지로부터 공고화돼야 흔들림이 덜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은 늘 이 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민대표 시진핑 동영상은 부식하기 쉬운 당국과 인민간의 신뢰관계의 현주소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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