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조류인플루엔자)에 이은 구제역도 결국 준비된 재앙이었다. 항체율 표본조사에 대한 맹신이 방역관리를 소홀하게 했고, 대충 떼우기로 넘긴 축산농가의 안일함이 구제역 바이러스를 출몰케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구제역은 전국 축산 농가에 백신접종이 의무화돼 있다. 소와 돼지를 키우는 농가들은 6개월에 한번씩 무조건 구제역 백신주사를 맞혀야 한다. 주사를 맞히지 않거나 소의 백신 항체 형성률이 80%를 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당국은 전국 한우농가 9만6000가구에서 10%를 표본으로 삼아 대표 소 한마리에 대한 항체여부를 혈청을 뽑아 확인한다. 이 결과 소의 항체 형성률은 작년 12월 기준 97.5%에 달했다. 표본 검사가 높게 나오자 당국이 소홀하게 생각한 것이다. 작년 10월부터 올 5월까지가 '구제역 특별방역대책기간'이고, 거의 100%에 가까운 항체 형성률을 갖고 있으니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으리라 자신했을 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엉터리였다. 첫번째 확진된 충북 보은군 젖소 농가의 항체율은 20%, 두번째 확진된 전북 정읍은 5%였다. 당국 관계자 조차 "5% 항체율이 나와서 당황스럽다"고 고백할 정도니 통계 표본오차가 상당히 컸던 셈이다.
당국은 전체 농가의 10%정도를 표본으로 삼는다. 전국 한우농가 9만6000개인데 9700개 농가에 대해 검사를 진행한다. 문제는 농장의 소가 10마리든 200마리든 관계없이 대표 소 한마리만 확인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산지역의 항체율은 100%로 나왔는데 검사대상이 13농가의 13마리 뿐이었다. 이번에 구제역 확진결과가 나온 농가들은 표본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농가들인 것을 보면 결국 겉핥기식 표본검사 결과로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백신접종 문제도 크다. 일각에서는 농장주의 도덕적 해이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비전문가에게 백신접종을 일괄적으로 맡긴 부작용이다. 실제 50마리 이상 키우는 농가는 농장주가 직접 백신접종을 담당한다. 1년에 2번 백신주사를 맞혀야 하는데 충북 보은 농가의 소는 195마리였다. 일일이 맞히기 힘들었을 수 있다. 또 맞히기는 맞혔는데 백신을 제대로 투약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신이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냉장보관된 백신을 꺼내 18도 내외의 적절한 온도를 맞춰줘야 한다. 하지만 농장주들이 온도를 맞춘다고 끓이거나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투약할 경우 백신의 효과를 볼 수 없다.
백신약값이 부담될 수도 있다. 한번 맞히는 약이 1700원인데 절반은 정부의 지원, 절반은 농가 부담이다. 이에 소 한마리에 주사기 한 개를 쓰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여러번 투약할 가능성도 있다.
옛날에 소는 농가의 재산 1호였다. 소가 있어야 논밭을 갈고 많은 짐을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도 소에 관한 보험이었고, 도둑 중에서 가장 나쁜 도둑도 소도둑이라고 했다. 소를 도둑맞거나 잃어버리면 거의 집 한 채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일 테니까 말이다. 소를 잃고 다시 잃지 않기위해 더 튼튼하게 고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잃기 전에 튼튼하게 외양간을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구제역 상황실에는 망우보뢰(亡牛補牢·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가 써있다고 한다. 농민들이 소를 더이상 잃지 않도록 이번에는 외양간을 빈틈없이 만들어 주길 바란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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