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미지만 좇는 허상의 정치를 경계하라
2017-02-08 08:00:00 2017-02-08 08:00:00
새해 들어 중국공산당이 이미지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고지도자의 육성이 랩(rap)에 삽입돼 회자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 CCTV는 올들어 '굉장했어, 우리들의 2016년!'이라는 랩을 을 만들어 내보낸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의 올해 신년사 일부 내용이 랩과 함께 육성 그대로 들어갔다. 중국이 최고지도자 권위를 랩에 실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중이다. 자칫 최고지도자의 권위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개 노래에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CCTV가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에서 보면 당중앙의 의도 혹은 생각과 유리되어 특정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특히 최고지도자가 등장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CCTV는 중앙선전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곳이다. 
 
권위의 상징인 최고지도자를 대중친화적인 매체나 미디어에 등장시켜서라도 당과 국가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 수만 있다면 기꺼이 마다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이미지 정치 중시 흐름이 이번 랩의 등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는 무거운 권위보다 부드러운 권위가 이미지 정치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중국공산당이 체득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작년 7월 중국공산당은 창당 9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我是誰)'라는 중국공산당 공익광고를 만들어 내보냈다. 중국공산당이 오죽하면 공익광고를 만들어서라도 국민들에게 다가가려고 할까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웹상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중국공산당이 갖고 있는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딱딱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당원을 통해서 중국공산당이 늘 인민과 함께 하고 있다는 일종의 '인민 친화적' 이미지를 보여준 것이다. 중국 공산당 청년 조직인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이 공개한 '이것이 중국이다(THIS IS CHINA)'라는 영어 랩 동영상도 외국인에게 중국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이미지 작업의 한 예다. 
 
중국의 이미지 정치 중시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내용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국이 지나온 변화와 개혁의 역사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사실 중국은 봉건주의에서 공화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넘나들면서 형식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과감성을 보여온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내용을 충분히 담아낼 수만 있다면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교조주이적'인 모습을 고수하지는 않은 사례가 적지 않다. 덩샤오핑이 주창한 '흑묘백묘론' 역시 이러한 실용주의적 사고를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이 어떻든 내용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형식이 갖고 있는 유연성은 내용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형식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흐름과 달리 내용은 여전히 정치적 유연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회자되고 있는 랩 역시 내용 면에서는 올해 시진핑의 신년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시진핑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보냄으로써 분명하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 내용은 올해 중국이 목표로 내세우는 정책 방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랩 중간중간 시진핑의 목소리로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여전히 빈곤 군중이다. 개혁과 발전의 성과가 훨씬 더 많은 군중에게 혜택이 미쳐야 한다", "우리들은 반드시 우리 이 세대의 장정의 길을 잘 가야 한다"는 당과 국가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형식의 다양성 못지않게 내용의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형식의 파괴 혹은 다양성 실험을 통해서 중국의 이미지 정치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의 통일성과 엄격함 등은 여전히 덜 중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미지 정치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당과 국가에 대한 인민의 지속가능한 신뢰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당과 국가 또한 인민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21일 홍군(紅軍) 장정 승리 80주년 기념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인민의 역량을 강조하면서 "물은 배를 띄울 수 있고,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순자·왕제편'에 나오는 말로, 통치자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으니 물은 때로는 배가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게 하지만 어떤 때는 배를 뒤집어서 물속에 잠기게도 한다는 말로 "민심을 얻는 것은 천하는 얻는 것이요, 민심을 잃는 것은 천하를 잃는(得民心者得天下, 失民心者失天下)"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민의 신뢰를 얻을 수만 있다면 형식의 파괴를 통한 이미지 정치도 충분히 수용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랩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끊임없이 당과 국가의 좋은 이미지를 인민의 마음 속에 두어야만 하는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는 랩 열기와 같은 형식의 파괴와 혁신을 통해서 이미지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최고지도자가 춤을 출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민심을 얻을 수 있고 당과 국가의 지속 가능한 신뢰가 보장된다면 랩 그 이상도 이미지 정치에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형식의 다양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미지만 좇는 허상의 정치에 매몰될 수도 있다. 이미지에 갇힌 민심이라는 것이 사실 매우 유동적이다. 국가의 명운이 이미지의 착시에만 의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2017년 초 중국에서 랩의 열풍이 반가우면서도 우려되는 점이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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