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박현준 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고강도 인적쇄신을 통해 세대교체를 단행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현상유지를 통한 조직 안정 쪽으로 기울었던 인사 방향이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급선회했다. SK 고위 관계자는 20일 “주말을 지나면서 인사 폭이 상당히 커지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의 김창근 의장과 함께 김영태 부회장,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그간 SK를 지탱해왔던 수뇌부의 전격 후퇴가 확실시된다. 젊은 피를 수혈해 그룹을 혁신하겠다는 최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투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SK는 21일 오전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검찰 조사와 국정조사 청문회 등 최순실 게이트 파장으로 인사가 조금 늦춰졌다. 지난해에는 같은 달 16일 단행했다. 임직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 관계자는 “갑자기 기류가 변해 혼란스런 분위기”라고 전했다. 당초 최 회장이 CEO 세미나에서 “변하지 않으면 서든데스(돌연사)할 수 있다”며 강도 높은 쇄신을 예고했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에 재계 시계가 멈추면서 SK도 현상유지로 기류가 변했다. 그러나 최 회장의 혁신 의지가 워낙 커 다시 대대적 쇄신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김창근 의장은 올해로 임기가 만료된다. 이미 한차례 연임을 했다. 최 회장의 공백을 안정적으로 메웠지만, 현상유지의 보수적 경영기조로 일관하면서 '따로 또 같이 3.0'의 경영철학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김영태 부회장도 후배들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회장과 함께 투 톱인 정철길 부회장도 자리에서 비켜날 것이 확실시된다. 큰 폭의 실적 개선은 공이지만, 방산비리 의혹은 부담이 됐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 등 재판이 남아 있다. 내부 관계자는 "한 사람이 김 의장 후임이 되면, 나머지 한 사람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두 사람 모두 후배들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전격적인 내부 발탁이 예상된다.
그룹의 삼각편대 중 하나인 SK텔레콤의 수장도 교체가 확실시된다. 대안으로는 박정호 SK㈜ C&C 사장이 유력하다. 박 사장은 SK텔레콤 뉴욕사무소 지사장과 마케팅전략본부 팀장을 거쳐 SK그룹과 SK커뮤니케이션즈 등을 두루 거쳤다. 특히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소버린 경영권 분쟁 당시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며 최 회장을 측근에서 보좌했다. 최 회장이 수감생활을 할 때도 옥바라지를 충실히 했다. 박 사장에 대한 최 회장의 신임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 박 사장은 최 회장과 고려대 동문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박 사장은 ICT 분야에서 새 판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데 능력이 탁월하다”며 "무엇보다 회장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은 SK㈜나 SK㈜ C&C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해 3월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에 부임한 터라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다. 올해 최대 현안이었던 CJ헬로비전과의 합병이 무산됐고, 실적도 제자리 걸음이다.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에 갇히면서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무선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도 최근 4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유임이 유력하다. 3분기부터 실적 반전에 성공했고, 삼성과 벌어졌던 기술격차도 상당히 좁혔다. SKC는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지만 신임 대표가 부임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이슈가 있어 불확실하다. SK가스는 실적이 나쁘지 않아 연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복귀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사면 및 복권이 되지 않아 정상적인 경영 참가가 불가능한 상태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귀속시키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여론을 의식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한편, 이번 인사로 SK가 그간 자랑으로 내세웠던 ‘따로 또 같이 3.0’이 퇴색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수직적 위계구조에서 벗어나 사별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할 것을 천명했지만, 끝내 쇄신의 칼날은 최 회장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는 한국 재벌의 구조적 병폐와도 맞닿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인사가 총수의 판단에 의해 급변한다는 것은 재벌의 후진적인 경영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이재영·박현준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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