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발레리(Paul Valery)가 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폴 부르제(Paul Bourget)의 말이다. 대통령의 탄핵에 돌입한 지금, 생각하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 떠올린다. 생각 없이 살아온, 사는 대로 생각한 이의 말로를 너무도 분명하게 마주했기 때문이다.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했단다. 정작 자신의 치세에서 삶과 행복을 송두리째 잃었던 이들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던 이였다. 수백명 국민들의 생사가 오가는 시간에도 한 시간이 넘도록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는 이였다. 세월호 유족들이 피눈물로 가득한 호소를 차갑게 외면하며 매번 차벽과 경호원으로 막아선 이였다. 대체 7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답하지 못하는 이의 말이기에 더욱 기가 막혔다.
다른 이들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만 반응하는 저 감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해 온 이를 권력자로 만든 우리의 수치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그의 추종세력들에게도 역시 그 삶은 생각을 거세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일구어 본 적이 없었던 사람, 누군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해줄 사람이 늘 필요했던 이에게 오직 하나의 목표는 어떻게든 예전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방법은 정치와 미혹뿐이었다. 18년을 청와대에서 살고 18년간 은둔한 다음, 다시 18년간 정치를 한 이유였다.
돈과 사람을 움직이는 이들은 따로 있었으니 그는 그들이 맡기는 대로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연기만 계속하면 되었다. 그러니 현실보다는 드라마가 좋았다. 남과 함께 하는 즐겁고 인정어린 식사보다는 삶과 괴리된 공상만을 즐기며 혼자 하는 식사가 좋았다. 때가 되면 옷을 챙겨주고 때를 맞춰 입에 맞는 음식을 주며 미용과 건강까지 약과 주사로 챙겨주는 이가 있으니 생각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으니 갑자기 그들의 도움을 끊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그의 머리 속에서 공과 사는 뒤섞인지 오래였다. 아버지가 만든 나라라고 믿었으니 청와대는 당연히 그의 집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었기에.
그래서 아침이면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집을 떠나는 것은 무엇보다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 집을 떠나면 만나는 아첨꾼들을 대하는 것도 이제 지겨워졌을지 모를 일이다. 하긴 그가 세상에서 만난 이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변신과 배신의 대가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경쟁과 승리, 출세와 축재를 목적으로 한 군상들은 어떻게든 ‘개돼지’ 신세를 벗어나 그들에게 군림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양심과 염치는 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일 뿐, 일단 힘센 사람 눈에 들어 자리를 차지하면 돈이 따라오고 책임은 저 멀리 미뤄둘 수 있으니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명했다. 굳이 매번 고민하며 삶을 돌아보기 보다는 시류에 편승하여 눈 앞의 이득을 챙기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지혜였다.
다행히(!) 시민들의 삶은 점점 힘겨워지고 삶의 가치보다는 물질의 가치를 앞세우는 세상으로 변해갔다. 생각하며 사는 이들보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니 저들은 더욱 편할 수밖에 없었다. 지성과 성찰을 잃은 사회는 그렇게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그렇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은 오래가지 않았다. 깨어난 시민들은 누구보다 평화롭게 촛불을 들고 누구보다 엄중하게 탄핵을 요구했다.
그렇게 촛불이 해일을 이루고 나서도, 단죄를 눈앞에 둔 공주 역할의 꼭두각시는 되려 시녀에게 속아 억울한 꼴을 당한다며 호소했다니 그 어리석음에 정말 피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정녕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며 열어가고 있다. 그 새벽을 밝히는 촛불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이들까지 깨우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의 생각은 다가올 새해에도 우리를 이끌어 줄 소중한 빛으로 남을 것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