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안팎이 격랑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민초들의 구호는 여전히 뜨겁게 허공을 데우고 있다. 안개 정국이다. 나라경제도 초겨울의 미세먼지처럼 뿌옇게 우리들의 시야를 흐리고 있기만 하다. 실물경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며, 경제 리더십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더해간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한반도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건으로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 간의 불협화음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와 관련하여 중국에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이 꺾이고 있다는 기사가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과 금한령(禁韓令, 한류 금지령)과 같은 조치들이 싸늘하게 한반도 쪽으로 한류(寒流)를 흘려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의 불씨를 안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기류와, 한국과 일본 간에 맺어진 한일 군사협정 등은 동북아시아 3국의 갈등 구도가 언제든지 불길처럼 가시화되고 확대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매듭을 풀지 못하는 실타래가 동북아시아의 상공을 겉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점에서 필자의 이목을 끈 것은 최근 일본의 시즈오카(靜岡)에서 열린 (2016년 12월 4,5일 개최) ‘한·중·일 30인회’였다. 그동안 한·중·일 공동체 구축을 위한 담론들은 무성했지만 그 성과는 생각보다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올해로 11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국제회의는 한국의 중앙일보, 중국의 신화사,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중심이 되어 개최하는 것으로, 세 나라가 돌아가면서 매년 한 차례씩 열고 있는 의미 있는 행사다. 한·중·일 3개국의 전직 고위관리와 경제, 교육, 문화 등 각계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되는 이 모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홍구 전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 쩡페이옌(曾培炎) 전 중국 부총리 등 중량감 있는 인물들이다. 거는 기대가 적지 않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회의의 성과물로 지금까지 다루어진 내용의 40%가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은 희망적으로 읽힌다. ‘3국 정상회담의 정례화’ ‘상설 협력 사무국 설치’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 선정’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한다. 필자도 10여 년 전, ‘한·중·일 30인회’와는 명칭이 다른 모임이었던 ‘한·중·일 국제학술 심포지엄’에 참가하여 학술 발표를 한 경험이 있지만, 학술회의나 국제회의에서 발표되고 제안된 내용이 정부의 주요 정책이나 콘텐츠로 채택되고 실행된다면 그보다 더한 성과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중·일 30인회’ 시즈오카 회의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인 이수만 씨가 참가해, “3국 프로듀싱 시장 기술을 뭉쳐 세계 1등 스타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는 동북아시아가 지향해야 할 공동번영 방안에 부합하는 것 같아 중요한 성과로 기억할만하다. 문화적 화합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공통된 대중문화의 확장을 기대해볼만하다. 또한 후쿠다 전 총리의 “신에너지·고령화, 동북아 공통 과제를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도 시급히 대책을 세우고 정책을 실행해야 할 과제로 손꼽을만하다. 올해 회의의 주제로 제시한, ‘세계적인 고립주의 확산-한중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시의적절 했고 건강한 제안들을 도출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한·중·일 3국의 관계가 늘 가변적이고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는 고립주의가 강화되는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중·일 30인회’는 현안의 핵심인 한·중·일 FTA, 환경문제, 고령화 등 3국의 공통 관심사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공동번영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을 경주하리라 믿는다. 향후에는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난제 중의 난제라 할 수 있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현명한 접근 방식을 도출해내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격랑의 시간을 맞고 있는 대한민국호(號)에도 희망의 깃발을 달아줄 수 있는 생산적인 정책 제언을 기대해 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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