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유라의 개가 구국충견? 고영태를 해부하다
2016-12-14 06:00:00 2016-12-14 06:00:00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고영태는 ‘정유라의 개’ 때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 최순실이 정유라의 개를 키우다가 그 개를 고씨에게 맡겼는데 개를 찾으러 가보니, 마침 고씨는 골프를 치러 나가서 연락이 되지 않았고 개만 혼자 방치되어 있어 대노하였고, 고씨와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평소부터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던 최씨의 태도에 화가 나 있던 고영태는 일종의 복수전을 꾀하게 되었고, 그 즈음부터 최씨 관련 자료를 모두 모아 TV 조선에 넘겼는데, 이번에 JTBC가 바통을 이어 받으면서 결국 2016. 12. 9. 대통령 탄핵 열차가 출발했다는 거다. 고영태의 이러한 말이 사실이라면 정유라의 개야 말로 ‘구국충견(救國忠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영태는 이날 기자들에게 “그간 가려지고 왜곡된 진실들을 국민 앞에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았다”면서 웃어 보였다고 한다. 그 누구도 모르고 넘어갔을 대통령의 추한 민낯이 개 한 마리를 둘러싼 사소한 언쟁에서 시작되었다는 점도 웃기지만, 펜싱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이자 전직 호스트 출신으로 권력에 기생해서 몇 년 동안 최순실 옆에서 호가호위 하던 고영태가 복수심에 시작한 비선실세 폭로전이 오히려 그를 청문회 스타로 만들었다는 점이 더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2014년 최순실은, 차은택과 가까워지면서 고영태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소위 ‘개 싸움’ 이후 그동안 사주었던 각종 명품과 귀금속 등을 돌려달라며 고씨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한다. 섭섭하다 못해 찌질한 최순실에게 배신감을 느낀 고영태는, 그 유명한 최순실의 비밀 의상실 장면을 몰래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최순실의 취미는 (대통령) 연설문 뜯어 고치기’라는 유명한 키워드를 남기기도 했다. 이제 고영태에게는 '국민 호빠', '정의의 호빠맨'라는 애칭까지 따라다니고 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어찌 보면 수줍은 듯도 보이고, 어찌 보면 묘하게 당당해 보이는 표정의 그는 1976년경 광주 출생으로 5·18 때 부친이 사망하며 조부모 밑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펜싱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딸 정도로 유명한 체육인이 되었지만, 그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호스트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경 '고민우'라는 가명으로 처음에는 광주에서 활동하다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룸살롱 등에서 명성을 날렸고, 2006년경부터는 강남구 청담동이나 논현동에 있는 업소에서도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스트 시절, 강남 가라오케 호스트바에서 '영업이사'로 활동하다가 2008년 경 프리마호텔 건너편에 있는 T 술집에서 호스트로 일하면서 최순실을 알게 된 것 같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20년의 나이차이가 나는 최씨에게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할 정도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된 것도 유흥업소에서 만난 특이한 인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대통령의 옷과 가방을 만드는 패션 잡화 브랜드 ‘빌로밀로’를 운영하면서 사업에 날개를 달았던 그는 2009년 4월, 방콕의 한 클럽에서 낯선 이로부터 엑스터시 1정을 받아 술과 함께 먹었다는 이유로 마약 사범으로 기소돼 2010년 법원에서 벌금 1천5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차은택을 최순실에게 소개하면서부터 그의 전성기는 끝이 보이게 되었고, 결국 차은택에 대한 질투와 최순실에 대한 복수심이 이번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고영태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구국충정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는 아주 단순하게 화가 났던 것이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늙은 주인을 향해 ‘용용 죽겠지’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찌 어찌하여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엉뚱하게 개 한 마리에서 시작된 대통령의 탄핵 열차는 이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근 두 달 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눈, 비를 맞으며 너도 나도 촛불을 켜들고 박근혜 탄핵을 외쳐댔고,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이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는 이제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과 헌재 연구관들의 잠과 휴식을 빼앗고 그들을 닦달하고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 모든 것이 정유라의 개 한 마리와 고영태의 유치한 보복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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