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신의 추억…레임덕은 없다
2016-09-13 06:00:00 2016-09-13 09:06:31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나만큼 나라를 걱정하고 완벽하게 사랑하는 이는 없다. 결단코 없다.
 
열 살 때였다.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지만,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한강을 건넜다. 해방 전부터 오로지 나라를 이끄는 힘에만 관심을 집중했던 아버지였다. 힘을 가지려 혈서를 쓰고, 힘을 보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조국의 해방을 맞았지만, 혼란 속에서도 역시 새로운 힘을 찾아 입당했던 아버지였다. 비록 발각되었지만 밀고라는 묘수로 역시 힘에서 멀어지지 않은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혹은 가장 멀리서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수출도 없고 고속도로도 없었다. 포항도 구미도 울산도 없었다. 홀로 즐거울 때면 일본 군복을 입고 일본 군가를 부르며 옛 영광을 추억하던 아버지는 오로지 그의 나라를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다. 그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억울한 죽음이야 얼마든 무시할 수 있었다. 아빠가 곧 나라였으니 그를 즐겁게 해준 연예인은 ‘국보’의 호칭을 얻어 마땅했다.
 
20대 초반에 엄마를 잃었다. 총을 쏘았다는 그 흉악한 간첩에게 자백을 받아낸 검사는 유신헌법을 입안하고 수많은 간첩을 만들어낸 중정에 있었다. 머리가 좋아도 절대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 상명하복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믿기로 했다. 아니, 믿어야 한다.
 
나라 걱정에 지친 심신을 달래느라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술을 마시던 아버지를 희대의 배신자가 총으로 쏘았다. 캄보디아 얘기를 하며 데모하는 것들은 탱크로 깔아뭉개면 된다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마저 여러 차례 쏘았다고 했다. 그 다음은 더 문제였다. 벽장 속에서 돈을 찾았다던 대머리 오빠는 내게 평범한 주택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던 골키퍼 출신이었다.
 
정말 그가 배신할 줄은 몰랐다. 세상에, 머슴인 줄 알았더니 주인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배신, 하극상…. 나는 영원히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감히 어떻게 그런 것들이 나를….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힘들었다. 아버지 앞에서 쩔쩔매던 모습이 선한 이들이 나와 아버지를 흉보고 웃어대기까지 했다.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그램이 좋았다. 동물들은 오로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충실할 뿐, 배신을 몰랐다. 사람보다 나았다. 정말 사람보다 나았다.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재산에 욕심을 내며 나를 배신하고, 사생활을 들먹이며 경호원 출신에게 편지를 써대던 동생들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당대에 한 자리 했다는 이들까지 칠푼이 운운하며 성직자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퍼뜨렸다. 그렇다, 결국 세상은 나 혼자 살아내고 이겨내야 하는 곳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배신하지 않는 동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내게 대들던 이는 가차 없이 버렸다. 하극상을 용납하는 것은 배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반드시 색출하여 처절하게 응징하는 것만이 아버지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정말로 배신하지 않는 이들을 찾았다. 내 앞에선 체면도 품격도 쉽게 잊어버리는 이야말로 진짜 사람이다.
 
내가 검증하고 찾아낸 이들이 문제라며 조사하는 이가 있다고 했다. 덕분에 위아래 가리지 않고 그를 철저히 응징한 훌륭한 사람을 만났다. 장인을 잃고 슬퍼하는 장모 곁에서 재산을 축나지 않게 지켜낸 사위 검사 출신의 비서, 정말로 믿음직하다. 오죽하면 이름까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니 더할 나위가 없다. 같지도 않은 일등신문이 그를 괴롭혀도 그는 단칼에 이겨냈다. 선배가 그만두라며 무겁게 호소해도 그의 휴대폰까지 빼앗아버리는 과단성이 너무도 후련하다. 나의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 내가 믿는다는데 대체 무슨 의혹이 있단 말인가.
 
다들 정신상태가 통제 불능인지, 은혜에 대한 보답은 다들 쌈을 싸 드셨는지 열병식까지 참여해준 중국인마저 내게 얼굴을 굳힌다. 오로지 믿을 건 선대부터 인연을 이어온 일본인뿐일까. 돈까지 내놓으며 철없는 할머니들을 위로하려는 진짜 남자다.
 
스폰서에게 배신당한 판검사를 보아도 배신하는 것들은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 그것만 지키면 된다. 레임덕이라니, 세상에 다리를 저는 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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