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집 근처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커피로 종종 무더위를 식힌다. 얼마 전 목격한 한 노인도 단돈 2000원으로 친구 몫까지 두 잔을 챙겨서 더위를 잠시 식혀보려고 편의점을 찾았으리라.
나와 계산대에 나란히 선 노인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앞의 빨대를 좀 처럼 찾지 못했다. '빨대 좀 줘'라고 다그치는 노인과 '코앞에 있는 빨대 왜 못찾냐'며 짜증을 섞어낸 여직원은 결국 육두문자까지 주고받으며 커피를 내동댕이 쳤다.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노인과 젊은이가 주먹다짐하는 사건 소식이 전해진다. 작은 짜증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해 노인과 손녀뻘 학생이 악다구니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어느새 이 정도로 팍팍해졌다는 의미일까. 안그래도 더운데 짜증거리가 하나 더 늘어 발생한 우발적인 상황이겠거니 했지만 사건의 핵심은 비단 빨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노인을 우습게 본 여직원의 '불경' 탓으로 점주가 사과하자 노인은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여직원 사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공원근처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며 매일같이 시비 거는 '꼰대'들을 여직원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공원 근처라 노인들이 많은데다 낮밤 가리지 않는 취객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빈번해 나름 대처방안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하필 그날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았던 것이다.
노인과 청년 중 누가 먼저 잘못했을까.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팍팍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나 할 것 없이 얼마나 심각한가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생존'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젊은이, 늙은이 가리지 않고 따라다닌다. 고질적인 이 스트레스는 결국 '배설'해야 한다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나 싶다. 그저 내가 처한 상황이 짜증스러워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누군가에게 풀어내고 싶은 마음은 아닌가 모르겠다.
실업난에 고단한 젊은이들, 노후파산에 직면한 노인들. 직장 한 자리 부여잡고 사는 30~40대 중년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짜증나게 더운 한 여름날에 서로에게 배려와 양보를 기대한다는 게 무리이지 않을까. 일자리도 없고 노년도 팍팍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불안하다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 목마름을 해갈해 줄 뚜렷한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사상 최고라는 무더위는 조만간 수그러들 것이다. 하지만 닭장처럼 좁은 곳에서 찜통처럼 열받는 일을 계속하며 생존해 나가야 하는 이들에게 쌓인 '배설의 욕구'는 해소되기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 갈등과 반목, 비난과 멸시를 하는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다 짜증을 핑계로 계속 배설을 해야만 하는 '어쩌다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꼰대가 되지는 말자.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며 살아가는 노인들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더욱 안타깝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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