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한국판 '데블스 에드버킷'
2016-08-11 06:00:00 2016-08-11 11:25:37
2016년 4월12일. 모든 것은 그날 시작됐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전직 부장판사 출신인 최유정 변호사가 만난 날이다. 정 대표는 상습도박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있었고, 그날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접견했다. 둘 사이 수임료 문제로 몸싸움이 있었고 최 변호사는 사흘 뒤 서울 강남경찰서에 정 대표를 상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사태는 누구도 예상 못한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최 변호사가 100억대 수임료를 받고 현직 판검사에게 로비를 벌인 혐의로 긴급체포된 뒤 구속 기소됐다. 여기에 맞물려 홍만표 변호사도 수십억원대 조세포탈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법정에 섰다. 검사장 출신인 홍 변호사는 정 대표의 개인 브로커로도 활동했다. 이 사건으로 적지 않은 현직 판·검사들과 검찰 수사관, 경찰 간부들이 조사를 받았다. 일부는 옷을 벗었으며, 일부는 법정에 섰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사태의 불길은 갈수록 더 크게 번졌다. 정 대표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입점 로비를 벌인 사건이 롯데그룹 전체로 옮겨 붙었다. 그러나 롯데는 이미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증거들을 조직적으로 인멸했고, 임직원들은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얼마 후 롯데케미칼이 국가를 상대로 270억대 소송사기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해외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무려 6000억원을 탈세한 정황도 포착됐다.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당혹스럽다. 이런 상황은 처음 본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그 뒤에는 대형 로펌들이 있었다. 대부분 국내 5위권인 굴지의 로펌들이다. 옥시, 폭스바겐 사건, 아니 그 이전의 대형 사건에서도 가해자인 대기업들 뒤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1997년 미국에서는 ‘데블스 에드버킷’이 개봉됐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악마도 변호한다는, 이른바 변호사의 부도덕성을 고발한 영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적 색채를 가진 이 영화는 신과의 결전을 준비하는 악마와 그의 선택을 자유의지로 거부하는 인간의 이야기쯤으로 정리된다.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말도 가톨릭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그의 부정적인 점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역할을 뜻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이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근대 100여년간 ‘법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변호사, 혹은 그들의 집단인 대형 로펌의 추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 있다. 최 변호사와 홍 변호사가 그렇고, 기업사건의 공범으로 의혹 받고 있는 복수의 대형 로펌들이 그렇다. 폭스바겐을 대리하며 전 세계 각국 검찰을 교묘한 법리로 농락하는 영국 로펌 프레시필드는 오히려 세련된 편이다.
 
현 상황을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에 단순 대입하는 것이 어쩌면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 속 대사를 곱씹어보면 다르다. 후계자로 선택된 유능한 변호사 케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는 존 밀튼(알 파치노)에게 묻는다. 밀튼은 악마격으로, 거대 로펌 ‘밀튼’의 대표 변호사이다. "(신에 대한 반격의 영역이) 왜 법이며 변호사인가?", 밀튼이 답한다. "법이면 안 되는 게 없으니까. 신흥종교라고 할 수 있지."
 
기업의 자본과 허영, 탐욕이 소송 만능주의와 뒤섞이면서, 로펌들은 어느 때보다 권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도덕성과 사명감을 내팽개 친 이들이 ‘에드버킷’이라는 선을 넘어 ‘데블스’로까지 변질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기철 사회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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