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떠나보낸 현대그룹…정몽헌 회장 13주기 조용한 까닭은
중견그룹으로 재편…현대상선 계열 분리
2016-08-04 06:00:00 2016-08-04 06:00:00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고(故) 정몽헌 회장의 13주기를 맞은 현대그룹이 올해는 조용한 추모식을 열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 불황으로 현대그룹의 주력사업이던 현대상선을 계열분리 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한 때 재계 서열 1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그룹이 자산 2조원대의 중견그룹이 되면서 현정은 현대그룹의 회장의 심경은 매우 복잡하고 착잡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그룹의 주축으로 사업영역을 확대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관광사업 중단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현대아산은 최근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탄산수 시장에 뛰어들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 2000년 5월 24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고성항 부두 준공식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현대그룹 
3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정은 회장과 현대아산 직원들은 4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서 (故) 정몽헌 회장의 13주기 추모제를 치른다. 현 회장은 지난 2013년과 2014년 북한을 방문했지만 지난해에는 현대아산직원들만 금강산 현지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올해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별도의 방북 신청은 하지 않았다. 현 회장과 장녀인 정지이 전무,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 등이 참석할 것이라고 현대그룹측은 전했다. 특히 오는 5일 현대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돼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되는 현대상선의 팀장급 이상 직원들이 올해 마지막으로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어서 추모식은 더욱 눈물 바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현대가(家)는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몽헌 회장은 현대상선과 현대아산, 현대엘리베이터를 손에 쥐게 됐다. 하지만 2003년 대북 사업 관련 검찰 수사 도중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현 회장은 평범한 주부의 삶을 접고 그룹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됐다. 
 
단순한 계열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현대아산의 앞날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대북사업 마저도 남북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특수한 상황 탓에 2013년부터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남북관광산업이 중단된지 8년째를 맞았다. 2008년 7월 관광 중단 당시 1084명이던 직원은 현재 215명으로 줄었다. 개성공단 가동까지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현대아산 측은 "금강산 관광에 대한 재개 의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확고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현대아산 측은 올해 하반기에는 남북관계 및 한반도 주변정세가 호전돼 남북경협사업이 재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5개월간의 대장정에 마침표 찍은 현대상선
 
5일 현대상선의 신주가 상장되면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으로부터 완전 분리된다. 사진은 현대그룹 연지동 사옥. 사진/뉴시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설립한 회사다. 정주영 회장은  단 3척의 유조선을 기반으로 1976년 '아세아상선'을 설립했고, 당시 세계석유 메이저 중 하나인 걸프로부터 원유수송권의 일부를 따내면서 아세아상선은 승승장구했다. 1983년에는 현재의 이름인 현대상선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부의 해운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중소해운사들을 연이어 인수하며 규모를 키워갔다. 이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의 부친인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의 신한해운이 합병됐고, 현대상선 성장과정에서 (故) 현영원 회장은 큰 공을 세웠다.  
 
현대상선은 1990년대에 들어 초고속 성장을 일구며 한때 세계 8위 선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물동량감소로 해운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3년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마련했다. 현대로지스틱스 등의 자산매각을 단행했지만 결국 올해 1월 2차 자구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현정은 회장이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고 알짜금융계열사인 현대증권 매각까지 결정하면서 현대상선 살리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지난 2월에는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4개월에 걸친 조건부 자율협약 과정을 이행해나갔다. 채권단은 출자전환의 조건으로 ▲용선료 조정▲사채권자 채무재조정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을 내걸었다.
 
현대상선은 지난 6월 10일 선주들과 용선료 협상을 시작한지 4개월만에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시켰다. 컨테이너 선주 5곳과 20%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합의했다. 앞으로 3년간 지급할 용선료 2조5000억원 중 약 5300억원 조정에 성공했다. 5월 31일과 6월 1일 이틀간 다섯번에 걸쳐 공모사채 8043억원에 대한 채무재조정까지 성공했다. 한진해운이 먼저 가입한 새로운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의 가입을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난항을 겪었다. 자율협약 과정에서 정부의 현대상선 회생 의지를 확인한 머스크로부터 먼저 동맹 제안을 받았고, 결국 지난 6월 14일 최대 해운동맹인 '2M' 에 가입하면서 자율협약 조건을 모두 이행하면서 기적같이 회생했다.  
 
5일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위한 신주상장이 완료되면 현대상선은 공식적으로 채권단의 관리회사가 된다. 현대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돼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출자전환이 마무리되면 지난 3월말 5000%를 넘어섰던 부채비율은 200%대로 떨어지게 된다. 채권단 측에서는 경영진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새로운 CEO선임 과정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브렉시트와 파나마 운항 개통 등으로 해운업황이 단시간내에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현대상선이 영업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상선 떼낸 현대그룹, 활로모색에 '분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 첫번째)과 조건식 사장 등 현대아산 임직원 20여명은 지난 2014년 8월 4일 금강산 현지에서 원동연 아태 부위원장 등 북측 관계자 20여명과 함께 고(故) 정몽헌 회장 11주기 추모식을 가졌다. 사진/현대그룹
 
현대상선을 계열분리 시킨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 중심으로 재도약에 나선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실상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으로 현정은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26.1%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아산과 현대종합연수원, 현대엘앤알 등을 거느린 구조다.
 
지난 1984년 설립된 현대엘리베이터는 2007년 국내 1위 자리에 오른 이후 줄곧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의 최근 5년간 평균 시장점유율은 44%로, 2위와 3위인 오티스(16.2%)와 티센크루프(15.3%)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자리를 구축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사업의 또 다른 축인 유지보수사업도 지난 1분기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꾸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사업구조를 가졌음에도 현대상선 때문에 영업외손실이 지속돼왔다.지난해 지난해 1조4487억원의 매출액과 15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지난 1분기도 마찬가지로 현대상선으로 인한 지분법손실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상선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기반은 탄탄하지만 큰 폭의 매출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현대그룹의 또 다른 주축이 될 현대아산은 최근 탄산수 시장에 진출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미국 생수 크리스탈 가이저에 대한 국내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이달부터 온라인 시장을 통해 '크리스탈 가이저 탄산수'를 출시했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크리스탈 가이저는 미국에서 수요층을 확보해 높은 브랜드 선호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온라인 생수 판매 1~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제품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크리스탈 가이저 탄산수가 미국 현지 생산인 만큼 FDA 등 까다로운 식품안전기준을 통과했고 풍부한 탄산량과 부드러운 맛으로 한국에서도 충분한 인기를 얻을 것"이라며 "국내 온라인 시장을 시작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점진적으로 유통망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향후 탄산수 뿐 아니라 크리스탈 가이저 생수의 국내 출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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