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조선업 구조조정 속도, 너무 빠르다"
“매출 인력규모 등 정부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2016-07-04 06:00:00 2016-07-04 06:00:00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해입니다. 지난해 2분기부터 부실의 규모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정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설비와 인력을 30% 감축하겠다는 기업들의 자구안을 받아냈습니다. 1년만에 세계 조선1위인 산업을 줄이겠다고 판단한 것은 대단히 성급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지금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된다고 하는데 지금 당장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들어 수주가 급감한 것은 맞지만 현재 상황은 작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면서 "정부의 등떠밀기식 구조조정으로 여태 쌓아놓은 한국조선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정부가 시간을 두고 각 주체간 대화를 통해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설비감축과 인력 구조조정은 바로 단행할 수 있는 반면 인력 육성과 설비 투자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설비 및 인력 감축 결정은 신중해야 합니다"
 
박 연구원은 구조조정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시간을 두고 조선산업의 각 주체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장기전망과 일자리를 연계해 사회적 대화와 토론을 진행하고, 만약 내년까지도 수주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서 설비와 인력을 줄여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금융권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경기전망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선진국 중심의 저성장 국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성장 및 인구증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쫓아오는 중·일 VS 몸집 줄이는 한국
 
한국의 빅3는 상대적으로 대형선박 및 고부가가치 선종에, 중국과 일본은 벌크선 및 중소형 선종에 경험이 많고 강점이 있다. 세계 조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이 각기 다른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데, 주력 선종의 차이는 기술력과 노하우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은 설비와 인력 감축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일본과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산업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중국제조(Made in China) 2025' 정책을 발표하고 10대 핵심 산업분야를 선정했다. 중국정부는 영세한 중소형 조선업체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한국 빅3에 대항할 우량 핵심 업체들을 선별해 집중 지원해서 조선해양산업의 세계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노후선박 및 신규 선박을 중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해운사에 대해 선가의 일부를 보조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자국조선소에 발주하는 해운사에게도 저리로 선박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국의 선박제조 능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연구원은 "탱커를 예로 들면 중국은 전체적으로 작업공정 관리에 매우 서투르기 때문에 한국 업체들의 건조기간은 2년 정도이지만 중국 업체들은 3~4년씩 걸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인건비가 저렴하지만 제작기간이 길어져 인건비 절감 효과가 반감된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점에서 한국조선이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뒤쳐진다는 말은 상당부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조선업체들에게 선박제작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조선산업은 중형조선소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일본은 대형선종에서는 한국에 비해 기술 수준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세계 1위를 달렸던 일본 조선산업이 침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70년대 이후 두 차례에 거쳐 전개된 '설비 축소' 방식의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2000년대 중국경제의 급성장 등으로 신조선 수요가 급증하자, 일본은 뒤늦게서야 '조선업 활력 재생을 위한 기본 지침' 등 여러 지원책들을 발표했다. 이어 선박금융지원을 강화하는 등 조선업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중형급 조선업체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 처음으로 2만TEU급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면서 400억엔을 투자해 대형도크와 크레인 등의 설비를 갖추고,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조선도 작년과 올해 190억엔 가량의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중국과 일본의 목표는 하나같이 빅3를 따라잡는 것"이라며 "현재 중국과 일본의 설비투자와 달리 한국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과거 일본의 설비축소식 구조조정을 답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은 세계 1등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에게 1등을 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꼴로,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추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조선산업에 대한 적정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박 연구원은 정부가 조선산업에 대한 분석과 장기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미래 한국 조선산업의 매출규모, 이에 따른 설비 및 인력 규모 등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조선업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전망에 대한 공유 없이 설비와 인력을 무조건 감축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 3사가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인력 및 설비 감축 등을 골자로 안 자구안을 내놓았다. 사진/뉴시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조선산업 점유율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중국이 40%, 한국이 30%, 일본이 20% 선이 적정하다고 봅니다. 만약 30% 이하로 점유율이 떨어지게 되면 조선업 산업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박 연구원은 “조선 세계시장 점유율 30%선을 유지하려면, 연간 1100~1200만 CGT 건조능력과 15~16만 정도의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15만명 중에서도 설계와 엔지니어 인력의 비율, 기능직 중에서도 숙련공들의 확보 및 향후 육성 방안 등에 대한 계획과 함께 과잉인력의 이직 및 전직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기능직 중에서 (사내)하청 비율을 줄여가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조선산업의 하청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업체들의 하청인력에 대한 관리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박 연구원은 분석하고 있다. 이는 제품 품질저하와 납기 지연 등으로 이어져 해양플랜트 부실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박 연구원은 "지난 13~14년 동안 조선업계 하청 숫자가 정규직과 비슷한 3만5000명에서 14만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 직영과 하청의 비율이 약 1: 3.5가 되었다"며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위해서 이처럼 높은 하청 비율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이 친환경 고품질 중소형 선박을 꾸준히 만들 수 있는 것은 한국의 하청에 해당되는 '사외공'의 비율을 1:2 정도로 유지하면서 이를 적절하게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 조선산업은 하청 비율을 줄여 고품질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조선업을 포함한 제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서비스산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는 언제든 거품이 낄 수 있고 위기에 쉽게 직면할 수 있지만 제조업 기반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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