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KBS와 외주제작 업계가 KBS의 자체 제작사 설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는 외주제작 3개 단체(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한국독립PD협회)의 주최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 회장과 안인배 코엔미디어 대표 겸 독립제작사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 회장(왼쪽)과 안인배 코엔미디어 대표 겸 독립제작사협회 회장. 사진/뉴시스
안인배 회장은 "공영 방송사인 KBS에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면 외주제작 시장이 사라질 위험성이 있다"며 "수신료를 받는 공영 방송사에서 이런 방식으로 생존을 꾀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굉장히 심각한 사태가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또 송규학 회장은 "KBS가 적자 때문에 제작사를 직접 설립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맞다. 만약 SBS가 제작사를 설립한다면 민영방송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공영방송인 KBS가 제작사를 설립할 것이라면 수신료를 포기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KBS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에 앞서 KBS는 KBS미디어, KBS N 등 계열사와 공동출자한 자체 드라마, 예능 제작사 '몬스터 유니온'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싸이더스 매니지먼트 본부장 및 콘텐츠 제작 본부장 출신인 박성혜씨가 몬스터 유니온의 CEO로 선임됐으며, 서수민 KBS PD가 예능 부문장을, 문보현 KBS 전 드라마국장이 드라마 부문장을 맡는다. 또 '제빵왕 김탁구',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을 연출한 이정섭 PD, '내 딸 서영이', '브레인'의 유현기 PD, '태양의 후예'의 한석원 제작총괄 등이 몬스터 유니온 소속으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자체 제작사인 몬스터 유니온을 설립함으로써 그동안 외주 제작사를 통해 제작됐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KBS의 의도다. 이에 대해 외주제작사들은 "방송사의 횡포인 동시에 골목상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몬스터 유니온의 설립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KBS 측은 "몬스터 유니온은 향후 국내 외주제작사들과 협업을 통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현재 국내 콘텐츠 제작 기반은 해외자본이 밀물처럼 몰려오면서 급속히 잠식되고 있다. 국내의 유능한 제작 인력도 중국으로 대량 유출되어 이미 많은 작가와 PD들이 중국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KBS가 몬스터 유니온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한 것은 이런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자본의 국내 방송계 공습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KBS가 한류 콘텐츠를 지키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하지만 "몬스터 유니온의 설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고 있다"는 외주제작 업계의 반응이다.
안인배 회장은 "외주제작사를 통해 협업하는 상생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걸 왜 몬스터유니온을 통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은 왜 상생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이어 "궁극적인 상생을 위해서는 외주제작사에 권한을 줘야 한다. 지금까지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에 제작비 일부를 지원한 뒤 저작권을 요구했다. 외주제작사는 작품에 대한 권한이 없어 성장하지 못했다"고 강조한 그는 "정부 차원에서도 특단의 조치와 정책이 있어야 한다. 몬스터 유니온을 설립한다고 해도 KBS는 절대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대책이나 방안이 없으면 방송사도 힘들고 외주제작사도 힘들다. 방송사에서 자기만 살려고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해욱 기자 amorr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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