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말 최태원 SK 회장은 내연녀와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며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 이혼을 요구했다. 재벌 총수가 자신의 치부를 언론에 드러내며 사생활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었다. 노 관장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을 거부했다. 그 사이 최 회장은 내연녀의 석연찮은 아파트 매매로 배임 혐의까지 썼다. 여론은 노 관장 쪽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 관계가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은 점은 이혼의 성사 여부다. 법리적 검토와 함께 여론전도 중요해졌다. 물론 SK 측은 "노 관장이 이혼의사가 없음을 계속해서 밝히고 있고, 최 회장도 이혼 얘기를 직접 하지는 않았다"며 섣부른 전망과 해석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재계 안팎에서는 '시간의 문제'로 규정, 언제든 수면 위로 재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의이혼·이혼소송 모두 "어렵다"
취재팀은 이혼 전문 변호사 22명에게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부부의 이혼과 재산분할 문제를 자문했다. 우선 '최 회장이 원하는 대로의 협의이혼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전원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현행법은 이혼과 관련해 엄격하게 유책주의를 채택, 배우자 중 한쪽이 바람을 피워 결혼생활을 깨뜨린 책임이 있을 때 해당 배우자에게는 재판상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윤기 법무법인 고우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이혼사유가 불필요한 협의이혼은 가능하다"며 "그러나 노 관장은 가정을 지키겠다며 협의이혼을 거부했고, 설사 최 회장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유책주의 때문에 소송 자체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협의이혼 대신 이혼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 회장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수 있을 것인가'에라는 질문에도 22명 전원이 "어렵다"고 답했다. 법무법인 이담의 윤소평, 곽지영 변호사는 "민법 제840조를 따르면, 재판상 이혼사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이혼 성립이 가능하다"며 "최 회장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하려면 노 관장에게 혼인 파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1월2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부인 노순애 여사의 빈소로 최태원(왼쪽 사진)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따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법원이 유책주의를 채택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소송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라은정 로엘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 회장은 유책 배우자"라고 전제한 뒤 "다만 판례 등을 비춰보면 상대방 역시 이혼의사가 있음에도 오기로 버티거나, 자신의 결혼파탄 책임을 상쇄할 만큼 배우자도 자녀나 재산 등에 잘못이 있을 경우, 별거 상태가 너무 길어 상대방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게 무의미할 때 등은 법원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을 받아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이 이혼을 요구할 경우는 사정이 180도 변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두 사람의 부부관계를 보면, 노 관장의 승소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임재훈법률사무소의 임재훈 변호사는 "노 관장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사실상 100% 이긴다"고 말했다.
관건은 재산분할, 변호사들 의견 엇갈려
노 관장이 협의이혼에 동의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해 끝내 갈라설 경우 재산분할이 어떻게 이뤄질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두 사람이 결혼한 1989년 이후 SK그룹의 재산축적 과정이 복잡한 데다, 노 관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다른 평범한 부부와 달리 재계 3위 총수와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신분까지 고려하면 재산분할은 더 복잡해진다.
강길법률사무소의 강길 변호사는 "협의이혼이든 이혼소송이든 기본적으로 부부가 공동으로 이룬 재산은 5대 5로 분할하는 게 원칙"이라며 "다만 노 관장이 협력해 번 재산에 대해서만 5대 5로 나눌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승용 법무법인 동신 변호사는 "결혼생활이 20~30년 정도면 재산의 50%는 아내가 가질 수 있지만 재산이 많을 경우 실질적으로 아내의 기여도가 적게 인정되는 경우가 생긴다"며 "SK그룹이 노태우 전 대통령(노소영 관장 부친)의 도움을 얻은 게 있다면 이런 부분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재계 상위권 도약의 발판이 된 부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얘기다.
라은정 변호사는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라도 전업주부와 노 관장의 경우는 다르다"며 "이런 특수한 케이스는 공동자산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1~2년은 기본으로 소요된다"고 말했다.
위자료 지급에 대해서는 3000~5000만원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리 법원의 위자료 상한선이 1억원 수준으로, 웬만해서는 위자료가 5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윤소평, 곽지영 변호사는 "위자료는 이혼하게 된 경위, 혼인파탄 책임의 정도, 배우자의 나이와 재산 등을 모두 참작해 법원이 직권으로 정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에 관한 법무법인 이담의 법률의견서. 사진/뉴스토마토
최태원 회장 보유지분도 재산분할에 포함될까
재산분할에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변수로 등장할 전망이다.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을 물밑 지원했다는 점에서 노 관장이 이혼 때 그룹의 특정 계열사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16일 기준으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 보유 지분은 23.21%(1646만5472주). 최 회장은 이를 통해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한다. 옥상옥이던 SK C&C를 SK와 합병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완벽히 전환했다.
변호사들은 최 회장의 지분 자체가 노 관장에게 넘어갈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임재훈 변호사는 "재산분할이 진행되면 원칙적으로 모든 재산을 한쪽에 귀속한 뒤 비율에 따라 나눠 현금으로 지급한다"며 "주식은 환가해 나누는 것이지, 최 회장 보유 지분이 그대로 노 관장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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