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속사포 선생님 전 상서
2015-08-26 06:00:00 2015-08-26 06:00:00
최강욱 변호사
속사포 선생님, 어디선가 이 글을 꼭 보실 거라 믿습니다. 영화를 통해 뵈었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건들거리면서도 정감 있는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도 친근하며 가슴 떨리는 그것이었습니다. 안옥윤도, 황덕삼도, 하와이 피스톨도 선생님의 장렬한 죽음 앞에선 작아집니다. 제겐 정말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조국이 사라진 시대를 살다 가셨지만, 덕분에 저희들은 이미 70년 전 밝은 빛으로 조국을 찾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시던 독립된 조국의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직 저희들은 그 숭고한 꿈 앞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송구합니다.
 
일찍이 하늘이 열리며 나라의 터를 잡고도 일제의 침탈을 겪었지만, 기미년 3월 1일은 실로 새로운 빛의 시작을 알렸고 그로 인해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왕정이 아닌 공화정으로 겨레의 의지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민족의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신 게지요.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너무 멋졌습니다. 처자식이 없어 궂은일을 맡는다고 능청을 떠셨지만, 겨레와 나라에 대한 그 숭고한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안타깝게도 두 동강 난 나라의 남쪽에 다시 세워진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점을 헌법에 분명히 새기며 출범했습니다. 질곡의 현대사를 겪으면서도 우리 겨레는 독재를 물리친 민주주의의 성취, 가난을 몰아낸 경제발전의 기적을 당당히 앞세웁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광복 70주년의 대통령은 통일의 새 시대보다 건국 67주년을 먼저 말했습니다. 국민의 64%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곧 건국이라 생각하고 있는데도 우리 대통령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국주의 식민시대 독립운동을 벌이던 수많은 민족과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조직을 꾸려 27년 가까이 독립운동을 벌인, 그래서 영원히 기억하여 자랑하고자 우리 헌법에 처음부터 박아둔 건국의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된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저희들은 염석진 같은 친일파들을 완전히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시대와 정세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자라난 독버섯들은 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주요한 역할을 맡은 이승만 정부의 수립을 건국의 기점으로 삼으려 합니다. 미국을 택한 ‘국부’ 이승만 덕에 민주주의가 있고, 쿠테타로 정부를 찬탈한 박정희가 없었다면 경제발전도 없었을 거랍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앙한다는 이들이,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을 맡은 시대에 정작 이승만과 박정희의 뜻을 부정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스스로 제헌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건국의 시점으로 하여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투쟁의 역사를 후세에 알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비록 ‘단기’ 연호에 밀렸으나 1919년을 기점으로 한 ‘민국’ 연호를 제창하여 고집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런데도 이승만을 찬양하는 이들은 이승만의 뜻을 저버린 채 건국절을 운운합니다. 심지어 공영방송의 이사장직을 모두 꿰차고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승만을 이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독재자 박정희는 1962년 스스로 지었다는 <우리민족의 나갈 길>이란 책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어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헌법이 규정되었지만, 그것은 한갓 문서상의 추상적 규정이었을 뿐이었다. 정부가 그것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러한 자유권을 스스로 짓밟기가 일쑤였다. 이리하여 정부의 유린에 시달리게 된 자유는 ‘정부의 강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정부의 탄압에서 벗어나려는 민권’의 형태로 싸웠던 것이 자유당 치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딸의 시대에, 이승만과 박정희는 기묘하게 손잡고 부활하려 합니다. 그들을 국부와 신으로 추앙한다는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동행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는 분단 70년의 대결과 긴장이 여전하고,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에 그치며 노인 자살률도 1위에 올랐다는 슬픈 소식이 이어집니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국가기관은 ‘지록위마’를 서슴지 않고, 벌거숭이 임금님을 돌보느라 바보가 되는 고관들이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닙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선생님처럼 정의를 위한 싸움을 계속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꿈꾸시던 조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알려줘야죠.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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