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애국주의 마케팅의 승리와 그 교훈
2015-07-20 15:55:48 2015-07-20 15:55:48
지난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승인 안건이 주주총회를 통과하면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세는 일단락됐다.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삼성으로서는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결안의 성공적 통과에는 ‘애국주의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 삼성은 주총 전 주요 일간지 1면에 ‘삼성물산 주주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내걸고 합병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온라인 신문과 방송 매체도 삼성물산의 광고로 도배됐다. 외국 자본의 공세로부터 국내 대표기업 삼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주총을 마친 뒤에도 삼성의 사후관리는 계속됐다. 20일 각 일간지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삼성물산의 광고가 실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대적 여론전과 함께 삼성물산 전 직원들이 전국의 소액 주주들을 찾아 위임장 확보에 나섰던 게 승리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삼성과 엘리엇, 양측 모두 표 결집을 마친 상황이라 소액 주주들의 표심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예기치 못했던 엘리엇의 공세에 삼성이 얼마나 다급하고, 절실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곧 삼성의 위기관리 허점을 드러낸 단면이기도 했다.
 
삼성은 이번 주총에 임하면서 ‘합병=국익·애국’, '엘리엇=국익훼손 먹튀’라는 구도를 짜고,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여론전을 펼쳤다. 그런데 합병이 국익 또는 애국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권 승계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에 수긍하는 여론이 많다. 단기 차익을 노리고 빅 이벤트에 참여한 엘리엇의 주장에 많은 주주들이 동조했다는 점은, 그래서 뼈아픈 대목이다.
 
삼성은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 경영과 함께 외부 투기세력의 공격에도 흔들림 없는 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주주와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일에는 그간의 사회적책임이 동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으면 한다. 이번 합병 과정은 법적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윤리적 측면에선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게 사실이다. 삼성 주장처럼, 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급하다고 국익과 애국에 호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두번 다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김영택 탐사보도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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