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휴전된 후 2개월이 조금 더 지난 1953년 10월 1일 한미동맹(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시기적으로나 내용면에서 볼 때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어떻게 한미동맹 체결의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도 한미동맹이 체결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제3국이 다른 국가 또는 지역의 전쟁에 합법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첫째, 동맹에 의한 개입이다. 동맹은 동맹회원국 중 하나가 침략을 받았을 경우 다른 회원국이 개입해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국제기구 또는 국제법에 의해 침략자를 응징하기 위해서 개입하는 경우이다. 한국전쟁의 경우, 발발 당시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과정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유산 중 하나는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한미동맹이 체결되는 과정을 보면 표면적으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의 부산물인 측면도 있다. 특히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협정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한미동맹이라는 당근을 준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반대하며, ‘휴전협정을 체결하려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재개입해 도와준다는 보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는 위협을 했다.
휴전에 대한 이승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미국 정부는 ‘에버 레디’라는 이름의 이승만 제거 계획(Operation Everready)을 수립했다. 이승만을 임시 수도 부산에서 서울로 유인해 감금하려는 계획이었다. 미 정부 내에서 이 작전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토의가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고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 국익이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승만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이승만을 제거해 휴전 반대의 근원을 없애든가, 이승만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 주면서 그를 설득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최고위층 회의에서 이승만 제거 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이승만이 원하는 방향의 안보 공약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승만을 제거해야 하지만, 이승만을 제거한 후 한국에서 이승만 수준의 반공주의자로 미국의 기본 이익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이승만 제거 계획을 포기한 이유였다. 미국 정부는 특사를 보내 이승만에게 동맹조약을 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휴전회담에 대한 이승만의 협조를 받아냈다. 한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군이 자동 개입하느냐, 아니면 헌법적 절차(의회 승인)를 밟고 개입하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거친 후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 내에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는 근거를 포함시켰고, 개입 조항은 미국의 원안대로 헌법적 절차를 거쳐서 개입하도록 했다.
김계동 연세대 교수
결국 유엔의 침략자 응징 결의안을 통해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은 전쟁이 끝나면서 향후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국제기구의 결의안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동맹이라는 것은 전쟁이 발생할 경우 서로 도와준다는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미래를 상정한 협력을 내용으로 하지만, 동맹조약을 체결한 국가들은 정치, 외교, 경제적 측면에서도 깊고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강대국의 경우는 약소국의 안보를 책임져 주면서 정치적인 개입도 하고 자국의 세력 확장에 활용하기도 한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동북아 국가가 아니면서도 동북아의 중요한 세력이 되었고 지금도 그 위상에 변함이 없다. 미국이 동북아 세력의 위상을 지닐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한미동맹, 한일동맹, 미군의 한반도와 일본 주둔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미동맹은 휴전을 반대한 이승만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한국전쟁과 이승만이 없었더라도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계동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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