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촉'을 주관과 객관의 접촉 감각이라고 설명한다. 확신을 가진 판단에 대중이 공감할 만한 논리까지 겸비한 뛰어난 감각 정도로 해석해 둬야겠다. 필자의 입맛에 맞게 다시 말을 붙이자면 '센스 있는 적극성' 쯤이 좋겠다.
그런데 윗동네에는 도통 이런 '촉'을 가지고 사태에 대응하는 인물이 없다. 나대신 책임질 사람만 찾는 무능력자만 가득하다. 지도자들의 남 탓을 또 듣고 있자니 아픈 과거가 떠오른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 청해진해운 소속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된다. 사고 2일 만에 배는 완전 침몰했고, 승객과 승무원 476명 중 295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9명은 아직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우리는 이날의 절절한 애통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 하나,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에 대한 극도의 아쉬움도 간직하고 있다. 그 후 한동안 초기대응 부실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었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던 행정안전부는 그 책임을 떠안고 발족 1년 7개월 만인 2014년 11월 해체된다.
초기대응. 대한민국 정책 시스템의 가장 큰 맹점이다. 사고가 터지면 우왕좌왕 하다 골든타임을 놓쳐 버린다. 언제나처럼 수장들의 책임 떠넘기기는 당연한 수순이다.
1년 만에 그놈의 고질적인 초기대응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번엔 전 국민을 공포에 빠뜨리고, 대한민국을 국제적 망신꺼리로 만들어 버린 메르스가 원인이다.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낮다던 보건당국의 확신과 달리 발병 10여일 만에 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모두 보건당국이 쳐 놓은 방역망 밖에 있던 환자였다. 3차 감염자가가 계속 발생하면서 3일 현재 확진자만 30명을 기록했다. 메르스가 각종 괴담과 함께 전국 각지를 점령해 나가자 다음 순서에 맞춰 "초기대응을 못했다"는 대통령의 질타가 이어졌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떠넘기기식 발언에 헛웃음이 나온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른데 덜컹 거리는 모양새와 처리 과정은 세월호 때와 판박이다. 1년 사이 변함없는 정부 대처 방식이 무서울 정도다.
재난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언제부터인지 무사안일 할 때 재난의 경고는 시작된다. 예고를 하기에 분명 막을 수 있지만 우리 정부는 준비가 안돼 있다.
관료주의에 휩싸인 수동적 '초기대응'은 제발 그만하자. 책임감과 확신이 담긴 '촉'이 대응하는 센스와 적극성을 갖자. 이제는 좀 변할 때도 되지 않았나.
박관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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