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 없이 약국에 갔다.
사실 어디가 아픈지는 잘 모르겠다. 아파서 간 것 같지 않다. 자꾸 나보고 ‘아프다, 아프다.’라고 해서 성화에 못 이겨 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간 약국은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청년약국’이다. 다섯 명의 약사가 아니 ‘동네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형들’은 말 그대로 ‘동네형들’이다. “야, 너 몇 살이야?” 나이로 거느리려고 했던 유년시절 속 골목 동네 형들과는 다르다. ‘좀 놀 줄 아는 형들’이 모여 있다. ‘동네’라는 단어로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침투(?)하겠다는 형들의 의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처럼 ‘동네형들’(사실 누나들도 있지만)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사진=바람아시아
- 문제 해결 방식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다
일과 삶을 분리하지 마.
‘일터’말고, 우리 ‘일상’으로 가자.
우리는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우리의 일상은 ‘일’이 되기도 한다.
‘출근’으로 시작해서 ‘퇴근’으로 끝난다. 삶과 일을 분리해서 바라보니, 이렇게 살다가 진짜 ‘일’만하다 죽을 것 같다. 사회적 화두인 ‘지속가능성’이라는 게 기업이나 경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내 생존을 위한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박도빈 프로그램 디렉터 - “지속가능도 그렇고, 한 개인으로 살면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스스로에 대한 문제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해요. 우리가 어떻게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 삶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결국엔 ‘지속가능성’이라는 목적 아래 문제 해결방법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방식을 ‘문화예술’로 선택하였다.
이인혁 아트디렉터 - “하고 싶은 거, 재미있어하는 거 하면서 살고 싶잖아요. 즐거움과 동시에 누구나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능이 있고 기술로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 그걸로 소통하는 것 같아요. 그 방식이 다양한 것뿐이죠.”
- 동네공터를 만들다
◇강북구 수요동에 있는 '동네공터'(사진=동네형들 홈페이지)
그렇게 형들은 삶과 일 그리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두지 않고,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그들의 공터를 만들었다. 서울시 강북구에 위치한 동네형들의 공간, ‘동네공터’다. 동네공터는 어릴 적 동네형들만의 리그와 같은 어둠컴컴한 주차장 공간이 아니다. 주민들이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강연과 워크숍, 전시 등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워크숍 등 이런 단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들은 ‘일상’을 이야기한다.
심은선 커뮤니티 디렉터 -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1인 가구, 혼자 사는 청년들. 같이 밥 먹고, 반찬 만들고. 가끔 모여서 좋은 영화도 보고 생각도 나누고. 이런 대상들을 같이 했으면 해요. 지금 그런 게 공터에서 일어나는 거고, 이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14년 김장시즌 '김치담고 보쌈먹고 도란도란'하게 동네형들과 동네청년들로 동네 공터는 복닥였다.(사진=동네형들 홈페이지)
- 동네형들 그리고 문화예술커뮤니티
◇사진=바람아시아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은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그래피티, 교육 연극, 스토리텔링, 요리 등 다양한 워크숍 기획과 축제 기획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동네형들의 워크숍과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술가가 된다. 2014 하이서울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골목드레싱’은 항상 거닐던 밋밋하고 단조로운 골목과 거리에 색색깔의 셀로판지 테이프를 가지고 다양한 색깔 맛의 ‘드레싱’을 뿌리면서 작품은 완성된다.
◇단조로운 골목과 거리에 다양한 맛과 색깔의 상상력을 뿌리다. - 골목드레싱 中(사진=동네형들 홈페이지)
‘골목드레싱’은 다양한 상상과 아이디어로 익숙하게 지나칠 수 있는 공간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참여형 거리 예술 프로그램이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작품을 보러오는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가 된다. 이 작품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이 스칠 때마다 아티스트가 추가되고, 작품은 계속 ‘완성 진행중’이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속적인 교육과 워크숍으로 ‘재미’가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다.
◇2014 하이서울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골목드레싱'(사진=동네형들 홈페이지)
- ‘청년병원’이 아니라 ‘청년약국’입니다
‘취업난시, 학자금 대출혈, 알바레르기, 장가 가려움, 변비정규직…….’
중2병보다 무서운 오늘날 청년들이 앓고 있는 ‘청년병’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청년약국’에 하나 둘 모인다. ‘청년약국’은 ‘멀쩡한 청춘들을 위한 자양강장 워크숍’이라는 이름 아래 2014년 5월 7일 ‘청년약국’ 1회‘지쳐 쓰러질 때까지 아이스 브레이킹’에서부터 결과 발표 전시회 ‘홀로서기’까지 10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주변에서 자꾸 ‘아프니깐 청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괴롭고 힘들어도 어디 가서 티도 못내는 청년들이 동네형들의 동네공터에 모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의 굴곡을 그려보기도 하고, 지역 안의 청년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예술작품이라는‘약’을 스스로 지어 만들어 먹음으로써 회복을 기대한다.
◇사진=바람아시아
‘청춘병원’이 아니라 ‘청춘약국’이다. 병원은 ‘의사’라는 전문의가 나의 상태를 판단하고 진단을 해준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처방’까지 해준다. 그저 나는 ‘어디가 아파요.’라고 말만하면, 의사 선생님이 원인과 처방까지 원스톱으로 진단해준다. 그래서일까. 동네형들은 이 워크샵을‘청년약국’이라고 지칭한다. 스스로가 약장수를 자처한 것이다. 약장수가 번지르르한 말로 사람들 스스로 약을 사게 하는 것처럼, 동네형들도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들 스스로 작품이라는 약을 지어 만들어 먹게 한 것이다.
박도빈 프로그램 디렉터 - “‘대한민국 청년이나 동네 청년들의 문제를 우리가 이렇게 바꾸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일 뿐이었어요. 저희는 사실 한 게 없어요. 같이 하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가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 그런 과정이나 결과를 전시하는 거죠.”
- 당신은 놀이터는 어디입니까?
동네형들이 동네공터를 만든 지 이제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 앞으로 만들어 갈 일들이 더 많다. 예술은 규정되지 않기에 매력적이다. 동네형들 또한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규정되기 어렵고, 자신도 어느 한 곳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동네형들도 규정하지 않았기에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다.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예술가가 되라는 법은 없다.
누구든지 느껴지는 불편함과 생각들을 표현하는 그 자체가 다 예술이다. 동네형들이 문화예술로 소통하려는 이유 역시 ‘일상에서 일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네형들은 당신이 일상 속에 표현하는 것을 도와줬을 뿐이다.
우리 인생 자체가 예술이고, 다만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각자 다 다르다. 그 표현 방식이 바로 ‘일’이다. ‘일’과 삶을 구분하지 말고, 내 일상 속에서 찾아가는 놀이를 즐겨보자. 그 놀이가 곧 예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놀이터가 바로 당신의 일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 속 공터에서 ‘동네형들’은 당신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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