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생 2300명의 외침 “학과통폐합 반대!”
대학가
2015-04-03 14:50:00 2015-04-03 16:03:48
◇4월 2일 오후 12시 39분에서 40분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건국대(사진=바람아시아)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건국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걸까,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걸까. 거리를 지나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오후 1시 노천극장으로!”를 외치는 영화과 학생들(사진=바람아시아)
 
이때 건대 호수 맞은편에서는 영화과 학생 몇몇이 제각기 준비한 피켓을 들고, 오후 1시에 열릴 <2015년도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의>를 알리고 있었다. “학과 통폐합에 반대합니다. 1시부터 노천극장에서 학생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정족수 1700명, 총 재학생의 10%가 채워져야만 총학생회의가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바쁘신 걸음 잠시만 멈춰 노천극장으로 향하여 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학과 통폐합은 특정 학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행정관 앞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 영화과 학생들과 그들 앞을 지나는 건국대학교 학생들(사진=바람아시아)
 
건국대학교 측은 영화과와 영상과, 텍스타일 디자인과와 공예과, 소비자 정보학과와 경영정보학과를 각각 통폐합 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통폐합의 근거는 취업률과 효율성이었다. 그중 영화과가 앞장서서 학과통폐합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주도했다. “Save KU Film”이라는 슬로건 아래, 통폐합 위기에 처한 여러 학과들이 뭉쳤다. 행정관에서 농성을 이어갔고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총학생회의가 열리는 4월 2일, 영화과 학생들은 건국대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외치고 있었다. 바쁘게 스쳐가는 학생들 틈 속에서 이들의 외침은 끊어지지 않고 반복됐다. 반복하는 외침을 뒤로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학생들의 모습 역시 반복될 뿐이었지만.
 
영화과 학생들이 서 있는 이 곳을 조금만 지나면 노천극장이다. 이 길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학생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과연 이들의 외침을 들었을까. 3시에 있을 수업을 잠시 잊고 노천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영화과 윤혜인(23) 학생은 “이 길을 지나는 모든 학생들이 노천극장으로 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노천극장을 가득 메운 건국대 학생들(사진=바람아시아)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오후 2시 15분. 노천극장은 각기 다른 학과에서 온 서로 다른 학생들로 가득 채워졌다. 학교의 일방적인 학과통폐합에 반대한다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학생회는 준비해놓았던 빵과 음료를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고, 학생들은 부족하나마 나누어준 간식들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 사이 노천극장에 모인 학생 수가 공개됐다. 정족수 1,700명을 넘어선 2,345명. 이는 각 학과 재학생의 10% 이상이자 총 재학생의 10% 이상을 모두 넘긴 수치였다. 건국대 총학생회장이 총학생회의의 참여한 인원을 발표하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회의가 다루는 안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의 일방적인 학과통폐합에 반대한다. 둘째, 2016년도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한다. 첫 번째 안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학생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과대의 어느 학생이 물었다. “총학생회의가 열리기까지 학생회는 무슨 일을 했나. 학교 측과 학생회가 소통할 길은 전혀 없었는가.” 이에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측은 부족했던 면을 받아들이고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학교 측에 전달할 것임을 약속했다. 학생회에 대한 비판과 이를 수용하겠다는 학생회의 다짐이 오고간 후, 본격적으로 첫 번째 안건에 대한 의결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하얀 면이 찬성, 검은 면이 반대라고 적힌 카드를 손에 쥔 채 각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학교의 일방적인 학과통폐합에 반대한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학우들은 찬성표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학생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천극장은 하얀 물결을 이루었다. 정족수 2,345명 중 찬성 2,074명, 반대 1명, 기권 270명. 첫 번째 안건에 대한 학생들의 이러한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하겠다는 학생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학우들은 박수로 화답했으며, 일각에서는 큰 소리로 환호하기도 했다.
 
◇하얗게 물든 노천국장(사진=바람아시아)
 
두 번째 안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 전, 무대 위로 고려대, 국민대, 세종대, 연세대, 한양대, 홍익대의 총 학생회장들이 올라왔다. 이들은 서로 다른 학교에서 왔지만 모두들 같은 목소리를 냈다. 대학의 일방적인 학과통폐합에 반대하며 이러한 움직임을 실천하는 건국대 학생들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힌 것. “대학은 취업 학원이 아닙니다. 건국대의 투쟁에 함께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대학의 진리는 무너집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는 건국대를 응원합니다. 누가 어떤 권리로 꿈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효율성과 취업률이라는 잔인한 잣대를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차가운 학교당국에 맞선 뜨거운 투쟁을 응원합니다.”
 
◇타 대학의 총 학생회장의 지지성명 발표(사진=바람아시아)
 
타 대학의 지지성명 발표가 있은 후, 건국대만의 싸움에서 학과 통폐합 문제를 겪고 있는 대학의 싸움으로, 더 나아가 앞으로 구조조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전국의 모든 대학의 싸움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정치대의 어느 학생은 “학과통폐합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타 대학과 연대하여 교육부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과의 어느 학생은 “이 자리에 와서 함께 싸워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영화과는 앞으로도 취업률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학과통폐합을 진행하려는 대학에 맞서 함께 싸울 것임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함께, 라는 말이 반가워서일까. 학생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반가움도 잠시, 노천극장 하늘이 어두워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은 먹구름이 학생들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만일 비가 온다면, 행정관으로 옮겨 회의를 진행해야 할 터. 그렇게 된다면 어렵게 한 데 모인 학생들이 흩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 찰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천극장은 술렁였다. 아무래도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는 학생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이 모인 자리 위로 하나 둘 우산이 펴졌다. 일부는 온전히 비를 맞았고, 일부는 가지고 있는 우산을 함께 나누어 썼다. 그렇게 모두들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우산을 편 채로 자리를 지키는 학생들(사진=바람아시아)
 
학생들이 떠나지 않자 회의가 이어졌다. “2016년도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에 뜻을 같이 하는 학우는 찬성표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학생회장의 말이 끝나자 우산을 잠시 내려놓고 찬성표를 들어보였다. 또다시 노천극장은 하얀 물결을 이루었다. 정족수 2,346명 중 찬성 2,213명, 반대 2명, 기권 136명. 학우들의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하겠다는 학생회의 발표가 이어지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 사이 비가 멎었다.
 
회의를 마무리하기 전, 영화과 학생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외쳤으면 합니다. 건국대는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을 철회하라” 그의 말에 응하는 2,345명의 학생들. “철회하라, 철회하라.” 하나의 목소리를 끝으로 학생들은 노천극장을 떠났다. 자리를 떠나는 학생들의 머리 위로 어느 샌가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먹구름이 걷힌 하늘
 
 
 
박다미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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