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엔저 공습에 수출 비중이 큰 국내 대기업들이 비상에 걸렸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에,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했던 기업들이 끝없는 엔저까지 겹치면서 추락일로다.
4일 오후 3시 기준 서울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949.46원으로 마감했다. 마감시간 기준으로 원엔 환율이 94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8년 8월 이후 6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 31일 일본 중앙은행(BOJ)이 본원통화 규모를 기존 60~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확대키로 하는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외환시장은 요동쳤다.
원엔 환율의 가파른 하락세에 전날 한국은행은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고 엔저에 따른 시장 영향을 점검하는 한편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시장에 미친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주식, 외환시장이 출렁이며 엔저 1차 피해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향후 엔저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금융시장은 힘을 쓰지 못했다. 이승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 연초 엔달러 환율은 110엔 중반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원엔 환율도 900원 초반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엔저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기업들의 실질적인 2차 피해다. 엔저가 지속되면 수출 경쟁상대인 일본 업체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실적 악화가속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일본 수출기업이 엔저를 통해 설비투자나 수출단가 인하를 진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관련 수출 품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질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10년간 원엔 환율이 우리 수출 증가율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본 결과, 원엔 환율 10% 하락시 우리 수출은 1.4% 위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일 수출경합도와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 엔화흐름과 기업이익의 상관관계가 정(+)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는 업종은 큰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서 산출한 수출 경합도 및 수출비중이 큰 업종은 석유제품, 플라스틱, 수송기계, 전기기기, 일반기계, 철강제품, 화학제품 등이다. 이중 원엔 환율과 영업이익 간의 상관관계가 정방향으로 높은 업종은 철강, 자동차(수송기계), IT가전(전기기기), 기계(일반기계), 화학 업종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 수출주를 중심으로 실적 전망 하향조정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박성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엔저 뿐 아니라 달러화 강세로 3분기 기업 실적이 부진했는데, 향후 엔화 약세 추세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업이익 전망치 하향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특히 자동차 등 일본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업종은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꾸준히 환율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며 "기업과 금융당국이 함께 환율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